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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Jan 03. 2022

순간을 살아라 유라야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보글보글 멸치 육수 끓어오르는 구수한 향내가 퍼질 때쯤, 물 부엌문이 벌컥 열리고 시어머님(이하 어머님)이 들어오신다. 한 손엔 칼자루를, 다른 한 손엔 뿌리가 댕강 잘린 싱싱한 배추를 한 움큼 쥐고, 성큼성큼 들어와 싱크대에 툭 던져 놓으시고는 팔팔 끓어오르는 냄비의 불을 한 단계 줄인다. 수압이 세다 못해 콸콸 튀어 오르는 물줄기로 배추를 활활 씻으시곤 숭덩숭덩 썰어 내 육수 냄비로 투하! 된장 한 숟갈 툭 떨구곤 휘휘 저어 끓이는 어머님의 된장국은, 세상 최고다. 한 모금 후루룩 훑어 먹을 때면 겨울철 감기도 다 도망갈 그 개운한 국물 맛에 온 몸이 녹아드는 듯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마저 해올 것을 잘못했다시며 다시 칼자루를 들고나가신 어머님은 오래지 않아 시금치나물과 대파를 한 움큼 들고 오셨다. 무심한 채소 목욕 후에 살짝 데쳐, 고소한 참기름 듬뿍 넣어 휘휘 무치시나니, 캬하~ 이건 우리 찬이가 세상 좋아하는 채소 무침이다. 어머님이 가을 내 장만해 둔 깨와 참기름만 있다면 채소무침은 세상 별미 중의 별미다.



시집온  4 동안 명절 때마다   어머님의 일상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1년에    겪을  있었던 어머님의 일상 매무새는 '?! 어떻게 이렇게  수가 있지?', '?!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 이렇게 살면  달에 백만 원이면 충분하겠다.', '?! 굉장히 스마트하잖아?!'.


직장생활 13 차에 접어들던 30 중반의 여성에겐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이 싹트기 충분했다. 하루 종일 장을 보지 않아도 음식이 풍요로웠고, 단숨에 올라가면 보이는 옥상  - 뒤로는 한라산, 앞으로는 짙은 녹음 -  여행에서 맛보는 그것과 견줄 바가 없었다. 현관  정원이 힐링이요, 뒤로 보이는 과수원이 별장  자체였.



18 서울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가장 큰 동기 "어머님"이셨다.



동네잔치가 열리는 날이면 펑퍼짐한 몸빼를 휙 벗어던지고, 순식간에 겟 잇 뷰티를 이루시는 우리 어머님의 변신술은 유튜브에라도 올림이 마땅하다 싶게 혼자 보기 여간 아까운 게 아니었다. 곱게 화장까지 마치고, 며느리가 사다 드린 명품백까지 툭 걸쳐 외출을 하시니, 오~ 이보다 더 도시스런(?) 어머님이 없다. 시골 어른이라고 대충 입을 거라는 나의 편견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어머님의 패션 감각은 철마다 새로운 옷과 함께 업그레이드되었다.



지옥철을 오가며 5센티 구두조차 짐스러워 벗어던졌던 나에게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비루함을 느끼게 하셨다. 멋지다며 감탄사 연발하는 며느리 앞에 갖춰 입어야 할 때는 잘 입어줘야 하는 거라며 총총총 외출하는 어머님의 뒷모습은 내 마음을 일렁이기에 충분했다.



하늘 한 번 바라볼 여유 없이 지옥철을 타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컴퓨터 앞에 앉아 열두 시간을 내리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의 삶은 결코 행복이라는 글자와 맞닿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퇴근하고 8시가 되고서야 겨우 만나는 세 살배기 아들은 외할미가 알아서 키워주겠거니 믿고 맡겼던 철없는 엄마였다.



주말이면 푸른 자연을 찾아 더디 자라는 아들과 놀아준다며 짐을 잔뜩 싸 집을 나섰다. 자연을 찾아 왕복 4시간 이상을 허비하는 삶 속에 고민이 찾아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더디 자람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낄 때쯤, 내 눈에 들어온 어머님의 일상은 순식간에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투박하지만 건강했고, 인생 뭐 별 거 있냐며 순간에 충실하라는 일종의 가르침 같았다.


그렇게 제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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