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를 꿈꾸며

by 이룸

노승이 참선을 하지 않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이었다

참선에 들어서자 산을 보면 산이 아니요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마음 쉴 곳을 얻고 나니 이전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


중국 송나라 때 청원유신 선사의 법어에 나오는 글입니다. 성철 스님의 인용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것을 궁구하다 보면 내가 단순히 알아왔던 것이 제대로 된 앎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체와는 많은 간극이 있게 마련이죠.


연인들 사이에 처음에는 겉모습만 보고 좋아합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너는 너, 나는 나입니다. 만남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의 실체를 접하면서 실망을 하게 되고, 내가 생각하는 너가 아니게 됩니다. 그런 채로 만남을 끊게 되면, 다음에 만나는 사람과도 비슷한 절차를 밟게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너의 실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너와의 부딪침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실체에 대해서도 성찰하는 자세가 바람직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단점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지내야 평온한 관계가 지속되겠지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를 꿈꾸며’의 앞부분입니다.


아이 때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식과 고정관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인간의 관점, 그 시대와 사회의 관점에서 세상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나이 들어서 아이처럼 해맑아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때가 잔뜩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순수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릅니다. 세상 물정을 알고 살아가려면 때가 묻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나이 들어서도 때가 묻는 게 싫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건 순수한 게 아니고 순진한 게 됩니다. 더러움도 알고 느껴보아야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과도한 청결의식은 면역력 결핍을 야기합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뛰어난 인간이 되기 위한 3단계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낙타와 같은 끈기, 두 번째는 사자와 같은 용맹함, 마지막이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심성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초인이 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이라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때가 많아지고 어떻게 하면 때를 떼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분별력을 지니면서 다시금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날릴 줄 아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사진은 2025년 여름에 진안에서 촬영한 부들레야(butterfly bush)와 호랑나비입니다. 사진에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곁들였습니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찬찬히 바라보면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