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상한 골목 상인

by 아르칸테


프롤로그


도망치던 날, 나는 그 골목에 들어섰다

그날 밤,
나는 집을 나온 게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미끄러져 나온 것이었다.문을 닫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그 소리는나를 향한 마지막 신호 같았다.

“이제 네가 감당해라.”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다.갈 곳이 없다는 사실만
또렷했다.거리의 불빛은모두 남의 것이었고,

웃음소리는
전부 다른 세계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때발걸음이 멈춘 곳이그 골목이었다.

좁고, 어둡고,이상할 만큼 조용한 골목.

천막 하나가 서 있었고,그 아래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반지, 목걸이,
낡은 시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마치

사람의 마음을 분해해 놓은 것처럼
어수선했다.

나는 묻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물었다.

“뭐 파세요?”

남자는 물건을 보지 않았다.나를 봤다.

그리고 말했다.

“도망치다 왔구나.”

그 한 문장에숨이 턱 막혔다.아무도내 상태를

그렇게 정확하게 말한 적이 없었다.

남자는 웃지도,위로하지도 않았다.그저

다시 물었다.

“넌 지금
누구한테서 도망친 거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달릴 수 없었다.

이 책은
그 골목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상인은
인생을 가르치지 않는다.
정답을 주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을 앉혀 놓고
자기 말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인생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다.
회복담도 아니다.

직면의 이야기다.

사랑에서 도망친 사람,
관계에서 무너진 사람,
자기 자신이 싫어진 사람. 그들이

한 번쯤은 반드시 서게 되는 자리.

그곳이 그 골목이다.

이 책을 덮을 때쯤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상인은 사라지지만,
질문은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젠가 당신을
멈춰 세울 것이다.

도망치고 싶을 때,
세상은 항상 나를 마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