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골목 상인
1장.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온 날
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등 뒤에서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처럼 울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고함과 식탁 위를 울리던 숟가락 소리가 아직도 귓바퀴에 붙어 있었지만,
그 소리를 붙잡아 끌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문밖으로 나온 순간, 겨울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숨을 쉬게 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도 나는 더 뛰었다. 도망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를 향해 나가고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저 집이라는 감옥에서 가장 먼 쪽으로 발을 옮기고 싶었다.
양쪽 골목의 간판들은 마치 나를 모르는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불빛들은 하나같이 비뚤게 흔들렸다.
누군가의 삶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세상은 모른다는 듯.
주먹은 아직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복싱장에서 배운 리듬이 아니라, 말로는 다 못한 분노의 진동이었다.
나는 분노가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무 말도 못한 내가 더 무서웠다.
입에서 죽은 숨처럼 빠져나온 한마디.
그 말은 금방 빛바랜 종이처럼 바람에 찢겨나갔다.
“젠장…”
그 한마디가 터져 나온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툭 끊어졌다.
말이 아니라 울음도 아닌,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친 뜨거운 기운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는 주먹을 쥔 채
텅 빈 골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왜 다 나한테만 이러는데!!!”
목이 갈라질 정도로 포효했다.
그 소리는 벽에 부딪혀 튕겨 나왔고,
다시 나를 찔렀다.
마치 내 소리가 나를 때리는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
그런데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목이 찢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더는 버티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때였다.
“야, 너 뭐하는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돌아보니 근처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애들 세 명.
담배를 비비고 있었고,
내 소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얼굴들이었다.
“미친 거 아냐?”
“아니면 지 혼자 쇼하는 건가?”
비웃음이 퍼졌다.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더 타올랐다.
나는 침을 삼키지도 못한 채 말했다.
“비켜.”
“뭐라고? 다시 말해봐.”
하나가 다가오며 멱살을 잡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분노가 아니라… 공허였다.
말도, 설명도, 핑계도 이제는 필요 없다는
이상한 느낌.
내 오른손이 먼저 움직였다.
툭—
한 번.
그리고
퍽, 퍽—
두 번, 세 번.
“야 이 새끼가…!”
둘이 합세했다.
몸이 맞고, 나는 주저앉을 듯 휘청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집에 있을 때처럼 ‘참을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말보다 주먹이 솔직한 언어였다.
말 대신 본능이 대답했다.
숨이 터질 듯 뛰고,
귀에서는 피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싸움인지, 폭발인지,
나 자신을 발작적으로 밀어붙이는 열기뿐이었다.
싸움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한 놈이 뒤에서 달려들어 내 허리를 감싸 붙잡았다.
나는 팔꿈치를 뒤로 꽂아 넣었다.
숨 막히는 소리가 뒤에서 터졌다.
앞에서 또 다른 놈이 주먹을 휘둘렀다.
볼을 스쳤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혹은 아픈 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누군가의 욕설,
발길질 소리,
바닥과 몸이 부딪히는 둔탁한 울림.
모든 게 뒤엉켜
하나의 소음이 되었다.
“잡아! 넘어뜨려!”
누군가가 외쳤다.
나는 바닥에 눕혀지기 직전,
힘을 모아 어깨로 상대의 명치를 밀어붙였다.
그 녀석이 뒤로 넘어가며 욕을 토해냈다.
나는 다시 일어섰다.
눈앞이 핑 돌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도망도 아니고
싸움도 아니고
그저 터지지 못한 무언가가
내 몸을 계속 흔들었다.
그때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울렸다.
“야, 경찰이다! 뛰어!”
아이들은 흩어졌다.
본능처럼 달아났다.
나도 뛰었다.
이미 숨이 다 타버린 뒤였는데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하얀 숨이 밤공기 속에서 터져 나왔다.
몸에서는 피비린내와 땀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거기 서! 학생! 멈춰!”
돌아보지도 않고 뛰었다.
그러다 골목 끝에서 미끄러져
벽에 팔꿈치를 부딪혔다.
통증이 번졌지만 다시 달렸다.
그러나 경찰이 더 빨랐다.
“잡았다!”
손목이 뒤로 꺾였고,
나는 거칠게 멈춰섰다.
숨은 불꽃처럼 튀어올랐고,
가슴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뛰었다.
낡은 형광등이 위에서 윙 하고 울렸다.
싸움에 휘말린 아이들 대부분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피멍, 흉터, 눈물, 욕설 자국.
경찰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너희 나이가 몇인데…
밤에 싸움질 하고 다녀?
부모님 부른다. 다들 정신 차려.”
옆에 앉은 애는 울먹이며 말했다.
“저희 엄마 금방 오실 거예요…”
문이 열릴 때마다
자식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부모들이 있었다.
“우리 아들, 어디 다쳤니?!”
“얘, 너 또 왜 싸우고 다녀!!”
울음, 꾸짖음, 한숨, 화.
하나둘씩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자에 남아 있는 아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경찰은 정적을 깨듯 말했다.
“…너네 집에는 전화해도 아무도 안 받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한숨을 쉬며
잠시 날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됐다.
집까지 데려다줄까?”
“됐어요.”
목소리가 너무 빠르게 튀어나왔다.
경찰은 말없이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심해서 가라.
다음엔 이런 일 없게 하고.”
나는 파출소 문을 나왔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세상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하지만 더 멀고, 더 비어 있는 건
내 마음이었다.
누군가는 오고,
누군가는 데리러 왔고,
누군가는 꾸중을 들으며 집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부재는 꾸짖음보다 더 큰 소리였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혼자라는 감각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긁었다.
파출소에서 멀어질수록
발걸음은 느려졌다.
나는 기계처럼 걸었다.
그러다
한 길목 앞에서 발이 멈췄다.
골목은
마치 세상에서 찢겨 떨어져 나온 곳처럼
어두웠다.
가로등도 없었고,
간판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누군가’의 숨이 먼저 느껴졌다.
그곳은
도망의 끝이 아니라
어딘가로부터 나를 부르는
조용한 입구 같았다.
몸은 지쳐 있는데
마음은 그 골목 앞에서 유난히 또렷해졌다.
마치 오래 잊고 있던 질문이
그 어둠 저쪽에 숨어 있는 듯한 느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골목 깊은 곳에서
낡은 등불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그 빛 아래에
낡은 천막과
수상한 물건들을 늘어놓은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골목 깊숙이 있는 그 천막은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온 골목이 숨을 죽이고
그곳만이 혼자 깨어 있는 것처럼.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 불빛에 조금씩 홀려 다가갔다.
천막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윤을 빛냈다.
금이 간 반지,
줄이 끊어진 목걸이,
깡통처럼 버려진 가능성들,
멈춘 듯한 낡은 시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오래된 물건들…
나는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의미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내 속을 건드리는 감각이 있었다.
마치,
이 물건들이 오래전부터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잡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낡고 낮은 목소리가
천막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거기
그림자 같은 한 남자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얼굴은 뚜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눈만은 어둠 속에서도 깊게 빛났다.
날 꿰뚫어보는 것처럼.
“그건 네 것이 아니거든.”
나는 반지를 내려놓았다.
괜히 죄책감이 밀려왔다.
도둑질이라고 부르기엔,
그저 ‘만져본 것’인데도.
“아.. 저그냥 만져 본건데요..”
이상한 아저씨는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를 던졌다.
“그거 만지면 죽어”
“네..?”
하하하 장난이다 이놈아 그렇게
더욱 이상한 느낌과 알수없는 친근함과 같이
지팡이를 나를 향해 들어올리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많이 흔들렸지?”
나는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 저를 어떻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허탈한 듯 깔깔거리듯 말했다.
“아이고야, 이놈아.
네 얼굴이 저렇게 다 찢겨 있는데
그걸 모를 사람은 동네 강아지밖에 없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저씨는 의자를 삐걱이며 당겨 앉더니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볼봐라.
여긴 부어 있고,
여긴 긁혀 있고,
여긴 피 말라붙어 있고…
아니, 이게 어떻게 ‘평범한 하루’냐?”
그 말투는 장난스럽지만
표정은 이상하게 진지했다.
놀리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진짜로 걱정하는 사람처럼.
나는 괜히 뾰로통하게 말했다.
“…싸웠어요.”
“아이고, 안 봐도 알겠다.
네가 싸운 게 아니라 ‘맞은 거’지.”
아저씨는 웃으며 손뼉을 한 번 쳤다.
“근데 내가 더 놀란 건 그게 아니고.”
그는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그 눈빛은 장난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빛으로 바뀌었다.
마치 어둠이 갑자기 집중하는 느낌.
“네가 이렇게 흠씬 얻어맞고도
여기까지 왔다는 거다.”
“…여기요?”
“그래.
대개 맞으면 집으로 가거나
도망쳐서 숨지.
근데 너는—”
그는 손가락으로 천막 바깥 어둠을 가리켰다.
“여기로 들어왔다.
이상한 잡동사니 천막으로.
누가 보든 미친 선택이야.”
아저씨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근데 그 미친 선택이
가끔은 사람을 살릴때도 있는 법.”
그 말은 농담처럼 뱉었는데
내 가슴에는 묘하게 깊게 박혔다.
“왜요… 왜 제가 여기 왔다고 생각하세요?”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그걸 알면 지금 이러고 이겠냐 이놈아 하하하 그러나
한가지는 알지.”
“…뭔데요.”
“네가 네 마음이 지쳐버린 날엔
집이 아니라
이런 골목으로 걷는다는 거.”
나는 말없이 아저씨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다시 조용히 웃었다.
아까의 장난기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그냥… 그만 흔들리고 싶었겠지?”
그 말은
너무 가볍게 들렸지만
내가 오늘 단 하루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모든 감정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찔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저씨는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흔들리는 건 잘못이 아니지, 이놈아.
문제는… 그 흔들림이
너를 어디로 데려가느냐지.”
나는 숨을 고르듯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는 천막 바깥의 어두운 골목을 가리켰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집에 가라.
네 흔들림이 널 이곳까지 데려왔으니
이제 돌아가도 된다.”
“근데… 또 오면요?”
아저씨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흔들릴 때 오면 된다니까.”
그 말은 가벼웠지만
묘하게 따뜻했고,
이상하게 위로 같지 않은데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상한 골목의 등불은
길을 비추는 불빛이 아니라
마음의 흔들림을 비추는 불빛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