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골목 상인
하루가 지났다고
세상이 나아지진 않았다.
학교에서는
선생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날 만큼
내 마음은 온종일 멍을 품고 있었다.
애들은 웃고 떠들었고,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연애하면서 소리 질렀다.
그 사이에서
나는 괜히 혼자 조용해졌다.
마치 내가 아닌 내가
수업을 듣고 있는 느낌.
종례가 끝나고,
밤늦게 집으로 가는 길.
내 발걸음은 집을 향했지만
마음은 자꾸만
어제 그 골목을 슬쩍슬쩍 바라봤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솔직히 집에 들어가고 싶지도,
그렇다고 다시 얻어맞을 이유도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 골목만 스치는 순간
가슴 안쪽이 움찔했다.
“아… 진짜 왜 이래, 내가.”
투덜거리며 걸었지만
발은 이미 그쪽으로 꺾여 있었다.
골목은 어제처럼
조용했고,
어두웠고,
어딘가 낡은 숨 같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천막 아래의 등불이
또다시 혼자 깨어 있었다.
천막 안쪽엔
그 아저씨가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
깡통 뚜껑을 톡톡 두드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모습.
내가 다가가자
그는 눈도 안 떼고 말했다.
“또 왔네.”
“…..”
“허허, 이놈 봐라.
형이 말하는데 대답이 없네?”
순간 멈칫했다.
형.
이상하게 그 말이
나를 한순간 붙잡아 놓았다.
아저씨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훑어보았다.
“근데 오늘은 안 맞았나 보네.
멀쩡하네?”
“…누가 매일 맞아요, 아저씨.”
“그치.사람은 두드려 맞는 것보다
속에서 뒤틀리는 게 더 아프지.”
아저씨의 눈빛이
그 순간만큼은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진열된 물건 하나를 툭 건드렸다.
“근데…
아저씨 진짜 뭐 하는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팔지 말라는 물건 파는 사람.”
“…그게 뭐예요.”
“음…
사람들이 잃어버리거나
버리거나
벽에 던져버린 것들을
주워다 파는 일?”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걸 누가 사요?”
“네가 오늘처럼 오면 사게 되지.”
아저씨는 천천히 나를 보며 말했다.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네 안에서 무언가가 반응하니까.”
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했다.
어제 그 반지나
금이 간 시계가 떠올랐다.
아저씨는 턱을 괴고 물었다.
“오늘은 왜 왔어?”
나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몰라요.
그냥… 형 보는 느낌?”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형은 맞다.
근데 뭐,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는 형이지.”
“뭐… 상관없어요.”
“오호.
그럼 오늘은 형이 뭐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톡 건드렸다.
“사람은
마음이 어디로 기우는지
그걸 보면
그 사람이 지금 ‘가장 외로운 곳’을 알 수 있어.”
나는 숨을 멈춘 듯 굳었다.
아저씨는 덧붙였다.
“넌 지금
집보다 이 골목이 덜 무섭지?”
“…네.”
“그거면 됐다.
오늘은 그걸 알았으면 충분해.”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천막 바깥 어둠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찾는 곳은
언제나 이유가 있다.
사람은 그 이유를 모를 뿐이지.”
나는 천막 아래 서서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맴도는 걸 느꼈다.
집은 무겁고,
학교는 숨 막히는데
이 골목은 이상하게
조용했고,
가볍고,
묻지 않는데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저씨는 마침내 말했다.
“가라.
내일 또 오든 말든 그건 네 마음이 정하는 거니까.”
나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리고 걸어 나가면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 나 이 사람한테 은근히 의지하고 있구나.
골목의 등불은
내가 등을 돌리자
조용히 흔들렸다.
마치
“잘 가라, 이놈아.”
하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등을 돌리고 몇 걸음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발끝이 멈췄다.
고개를 완전히 돌리진 않은 채,
옆으로 슬쩍 시선을 돌려 말했다.
“…아저씨도 혼자세요?”
그 질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왔고,
입 밖으로 나온 뒤
내가 더 놀랐다.
천막 쪽에서는
아주 잠시,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아저씨는 천천히 의자를 삐걱이며 움직였고,
그 특유의 간드러진 웃음이 뒤에서 따라왔다.
“오호… 드디어 묻네?”
나는 괜히 코트를 여미고
투덜거리듯 말했다.
“아니, 그냥…
맨날 보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아저씨는 손에 들던 금간 깡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내 쪽을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혼자냐고 했지?”
“…네.”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니다.
나, 혼자 아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 가족 있으세요?”
“그건 없지.”
“…그럼 누구랑”
“너 같은 녀석들.”
그 말은
농담이었다.
근데 농담 같은데
진짜 같았다.
아저씨는 의자 등받이에 툭 기대며 말했다.
“세상에 혼자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지.”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딱히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아저씨는
혼자 같아요.”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그래 보이냐?”
“네.”
내 말투는 거칠고 무심했지만
속마음은 더 깊은 곳에 내려가 있었다.
아저씨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천천히 말했다.
“그래.
네 눈에는 나는 혼자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아주 낮은 톤으로 덧붙였다.
“너도 그러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아저씨는 일부러 장난을 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라, 이놈아.
혼자 커 보이고
혼자 먹고
혼자 이겨내는 날이 있어도
그게 진짜 혼자는 아니다.”
“왜요?”
“누군가가
어디선가
네 등을 보고 있으니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저씨는 뭔가를 던지듯 말했다.
“자, 이제 진짜 가.
밤 늦었다.
형도 이제 장사 접어야 한다.”
‘형’이라는 말이
또다시 가슴을 건드렸다.
나는 천막 앞에서
아저씨를 한 번 바라보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내일 와도 돼요?”
아저씨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오는 건 네 마음이지.
단, 싸우고 맞고 피 흘리고 오는 건 금지.”
“에이…”
“에이 아니고.
이 골목은
‘도망치는 애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길을 잃은 애들’이 잠깐 쉬어가는 곳이야.”
나는 작게,
정말 작게 웃었다.
그리고 뒤돌아 골목을 나섰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등불을 한 번 흔들어 놓았다.
그 불빛이
조용히 나를 보내주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을 벗어나면
세상은 다시 원래의 소리를 되찾았다.
차 지나가는 소리,
술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를 지나
나는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문 앞에 서자마자
마치 두 세계가 완전히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깥의 밤은 조용했고,
골목은 나를 받아줬지만—
집은 언제나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자
아버지가 거실에 서 있었다.
그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어릴 때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사실보다
그가 언제나 화나 있는 얼굴로 보인다는 게 더 컸다.
내가 들어오자
아버지는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정확히는…
그는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나는 그가 내는
탁한 공기의 진동만 느꼈다.
“……!! …!! …!!”
나는 그 입 모양만 보고
익숙한 문장을 머릿속에서 꺼냈다.
왜 이제 들어오냐.
또 싸우고 다닌 거냐.
사람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아버지는 늘 같은 말만 했다.
그조차 나에겐
아버지가 아니라
“큰 벽”처럼 느껴졌다.
나는 신발만 대충 벗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 학교에 있었어.”
아버지는 듣지 못했다.
내 입 모양만 보고
또다른 오해를 쌓았다.
“……!! …!!”
나는 벌써 지쳐버린 표정으로
발로 바닥을 툭 차며 말했다.
“아, 진짜… 듣지도 못하면서 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잖아.
내 말이 들려야 뭐라도 대답을 하지…
맨날 혼내기만 하고…”
아버지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뭔가 말하고 싶은 사람의 눈이었지만
어떤 말도 못 하는 눈이었다.
그 눈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문을 세게 닫는 것뿐이었다.
“아 몰라… 진짜.”
문을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 안은 어두웠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뒤섞여 올라왔다.
분노와
서러움과
부끄러움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
우리 집은 왜 항상 이 모양일까.
엄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둘은
대화도 안 되고
감정도 안 맞고
상처만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드러내며 살았다.
나는 이 집에서
단 한 번도 ‘편안함’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문득,
조금 전의 골목 천막
그리고 등불 아래 앉아 있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이상하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그 사람 앞에서는
왜 이렇게 편했을까.
나는 침대 위에 앉아
옷깃에 남은 담배 냄새와 피비린내를 느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왜 저길 또 가고 싶어하는지
조금 알 것 같네.”
집은 막혀 있었고,
학교는 답답했으며,
내 마음은 어디에도 앉을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골목만은
말도, 소리도, 설명도 필요 없는데도
내 마음이 잠깐이라도
쉬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누군가를 떠올리며 잠들었다.
골목 상인 아저씨.
말은 장난스럽지만
눈동자는 깊은 사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형’ 같다고 느낀 사람.
그 생각이
따뜻한 숨처럼 가슴에 조금 머물러 있던 그때였다.
끼익
방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아버지가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만 밝았다.
항상 그렇듯,
표정은 ‘화난 얼굴’로 보였지만
나는 그게 화가 아니라
그저 듣지 못하는 사람의 습관적 긴장이라는 걸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말 대신
천천히 손을 들었다.
수화.
늦었어.
걱정했어.
나는 이마를 짚으며 숨을 내뱉었다.
“아, 또 시작이네…”
아버지는 내 입 모양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았지만
그 짧은 한숨 속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조심스럽고, 느리고,
어디까지나 내 눈치를 보는 동작.
어디 갔다 왔어.
다친 거 아니지.
싸우지 마라.
나는 억지로 손을 들었다.
수화는 배웠지만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손끝부터 막혔다.
학교.
아니, 싸움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줘.
아버지는 내 손동작을 따라가며
잠시 멈칫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뭐가 빠졌는지
뭐가 감정인지
그는 늘 헷갈렸다.
“……?”
아버지가 다시 손을 들었다.
근데 왜 표정이 그래.
화났어?
힘들어?
나는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제일 깊은 곳에서 답답함이 올라왔다.
“아… 진짜…
아빠, 그렇게 묻지 마요.”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입술이 떨리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도 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수화를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물어야 하니.
나는…
잘 모르겠다.
그 말이
이상하게 더 아프게 꽂혔다.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화가 아닌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 멀어지는 것처럼
무언가 끝없이 엇갈리는 느낌.
나는 갑자기
모든 게 버거워졌다.
“아… 그냥…
그만해요, 제발.”
손도 멈췄다.
아버지의 표정이
이해와 슬픔과 오해의 경계에서 흔들렸다.
나는 숨이 막히는 것처럼
문으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가지 마.
늦었어.
말 좀 하고 가.
그 손짓이
내 마음을 잡지 못했다.
오히려 더 죄책감과 분노를 불러냈다.
“아빠는…말은 되는데 내 마음은 모르잖아…”
아버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숨은 오히려 트였다.
집을 떠날 때마다 드는 감정—
미안함과 분노와 서러움이
한 덩어리로 엉켜 목을 조였다.
나는 뛰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런데
마음이 알고 있었다.
결국 내 발길은
그 골목 앞에서 멈렸다.
어두운 천막.
닫힌 문.
꺼진 등불.
하지만 나는
그 문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손을 들어
문을 세게 두드렸다.
“아저씨!!!
형!!!
저 왔어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나는 다시 두드렸다.
“좀… 나와요…오늘은…집에 있기 싫었어요…”
목소리가 갈라지고
손등이 아플 정도로 천막을 두드렸다.
그리고
잠긴 듯 고요한 그 안에서
등불 하나가
스르륵 켜졌다.
빛이 발밑까지 흘러나왔다.
잠시 뒤,
낡은 문이 바깥으로
살짝 밀렸다.
“이놈이..
또 왔네.”
아저씨의 목소리는
어둠보다 부드럽고
집보다 따뜻했다.
그 한마디에
나는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아저씨는 내 상태를 위아래로 훑더니
정적이 흐르는 무거운 밤공기를
뜻밖의 한마디로 허무하게 갈랐다.
“돈 없는 놈은 안 받는다.”
나는 황당해서 숨을 딱 멈췄다.
“…네?”
아저씨는 턱을 쓰다듬으며 반복했다.
“돈. 없는. 놈. 출입 금지.”
나는 실소가 터졌다.
“아저씨도 없어 보이는데요?”
아저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 이놈이…!”
그리고 옆에 있던 낡은 지팡이를 집어 들더니
내 배를 슬쩍— 아니, 은근히 세게
‘쿡’ 눌렀다.
“어이구, 버릇없기는!
형 지갑 사정까지 꿰뚫어보는 건 또 어디서 배웠냐?”
나는 지팡이에 밀리면서도
입 꼬리를 참지 못하고 올라갔다.
“형이요?
아저씨가 형이라고 해도 되는 나이세요?”
아저씨는 코를 훌쩍이며 지팡이를 들고 위협하는 척했다.
“야, 이놈.
지금 누가 누굴 놀리냐.
내 나이로 형 소리 들어본 게 몇 년 만인지 아냐?”
말은 장난인데
어딘가 진짜로 기분 좋아 보였다.
나는 배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래도…들어가도 돼요?”
아저씨는 지팡이를 바닥에 ‘톡’ 내려놓고
천막 안을 털며 말했다.
“그래, 들어와 이 자식아.
돈은 없어도…사연은 있어 보이니까.”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차갑던 밤과
막혀 있던 집과
말이 안 통하는 아버지가
잠시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따뜻한 천막 속으로
내 마음이 쏙—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