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골목 상인
3장.얽힌 마음
천막 안은
밖보다 훨씬 따뜻했다.
낡은 난로가 조용히 타고 있었고,
아저씨는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앉아라.
숨부터 좀 돌리고.”
나는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심장이 아직 어수선하게 뛰고 있었다.
아저씨는 주전자의 뚜껑을 열고
김이 올라오는 걸 보더니 나를 힐끔 바라봤다.
“얼굴이… 음.”
그는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집에서 한 판 있었구만?”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아요?
제가 무슨 말도 안 했는데…”
아저씨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귀신이냐?
말 안 해도 티가 다 난다, 이놈아.
집에서 공기랑 싸우다 온 애들 얼굴이 다 그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저씨는 주전자를 쿵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너, 들어올 때
손을 계속 이렇게 쪼물딱거렸어.”
아저씨는 내 행동을 흉내 내며 말했다.
“누가 집에서 신경 긁어놨다는 뜻이지.”
나는 조금 화가 난 듯 말했다.
“…우리 아빠는 그냥… 대화가 잘 안 돼요.”
“왜? 싸우셨어?”
“싸운 건 아닌데…
아빠는 귀가 안 들려요.
나는… 수화를 할 줄 아는데…”
아저씨는 손을 턱에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
그래서 ‘대화는 되는데 말이 안 통한다’는 표정이었구만.”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저씨는 수화 얘기가 궁금한 듯 물었다.
“너 수화할 줄 알아?”
“…네. 아빠 때문에 어릴 때부터 배웠어요.”
“오, 그건 멋있네. 그럼 대화 잘 되겠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게… 말은 되는데 감정이 자꾸 엇나가요.”
아저씨는 지팡이를 무릎에 올리며 말했다.
“대화가 어려운 게 아니고,
둘이 다른 속도로 상처받는 거다.”
그 말은 철학이 아니라
그저 생활을 오래 산 사람의 감각이었다.
나는 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빠는 늘 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는…
아빠가 나를 오해하는 게 더 싫고.”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마음이 자꾸 꼬이겠다.”
“…꼬인다구요?”
“그래, 꼬이지.
너 지금 마음 안에
너무 많은 게 한꺼번에 들어와 있어.”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선을 그었다.
“서러움,
답답함,
억울함,
그리고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는 마음’.”
그 말은
마치 내 가슴속의 매듭을
순서대로 짚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럼…
어떻게 풀어요?”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몰라도 된다.”
“왜요?”
“너는 지금
‘풀 준비’가 된 아이가 아니고…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은 아이’에 가까워.”
나는 멍해졌다.
“…차이가 있어요?”
“있지.
풀기 전에 먼저 봐야 할 게 있어.”
아저씨는 컵을 나에게 밀어주며 말했다.
“너 지금… 세상이랑 싸우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이랑 싸우고 있다.”
나는 그 말에 대답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천막은 따뜻했고
말은 현실적이었고
아저씨는
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문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나는 내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느낌’을 맛봤다.
천막 안의 공기가 조용히 데워지고 있었다.
김이 올라오는 주전자 소리가
내 마음 속 어딘가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컵을 잡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나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아저씨는 멈춰서서
나를 찬찬히 바라봤다.
놀라지도 않았고,
대단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 굳어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이 열리는 순간을 오래 기다려온 사람처럼
잔잔하게 웃었다.
“왜 이렇게 됐냐고?”
“…네.”
아저씨는 지팡이를 바닥에 툭— 하고 세워두고 말했다.
“그 질문은 말이다.
네가 ‘망가졌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질문이야.”
나는 고개를 확 들었다.
“망가진 건 아니에요.”
“그럼 왜 이렇게 됐냐고 묻냐?”
“…그냥… 나만 이상한가 싶어서.”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 이상한 거 아니다.
너는 지금…
‘자기가 자기에게 실망한 아이’다.”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저한테 왜 실망해요?”
아저씨는 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은 컵을 쥔 채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
사실 지금 자기가 한 말들을
다 후회하고 있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저씨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말이다. 사람이 자기 행동을 후회하는 건
‘잘못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진짜 마음’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진짜 마음?”
“그래.”
아저씨는 주전자를 기울여
내 컵에 물을 더 채웠다.
“너는 사실
아빠가 싫은 게 아니라
‘아빠에게 자꾸 오해받는 너 자신’을 견디기 힘든 거다.”
그 말은
어딘가 뼈에 흐르는 피를 찍어 건드린 것처럼
서늘하게 느껴졌다.
“…근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빠 때문이잖아요.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아저씨는 내 말을 끊었다.
“봐라.또 시작이지?”
“…뭐가요?”
“탓부터 찾잖아.
네 잘못도 아니고 아빠 잘못도 아닌데
자꾸 어디에 던져놓을 데를 찾고 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진짜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저씨는 의자를 당겨
내 정면에 앉았다.
“사람 마음이 꼬일 때 제일 먼저 생기는 게 뭔지 아니?”
“…화?”
“아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마음이다.”
그 말은
거짓말처럼 정확했다.
나는 대답 대신
아저씨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저씨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너 지금…
네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기억해라.”
아저씨는 컵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아빠 때문에 상처받은 게 아니라—”
그리고 지팡이 끝으로
내 가슴을 살짝 찔렀다.
“‘아빠가 너를 오해한다고 느낀 너 자신’ 때문에 상처받았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게 뭐가 달라요?”
아저씨는 천막 밖 어둠을 가리켰다.
“세상은 너한테 상처를 줄 수 있다.
근데
그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네 몫이다.”
“…….”
“너는 지금
상처를 당한 게 아니라
‘상처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거다.”
그 말은
낯설고
속을 파고들고
어딘가 이해가 되려다가
또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아저씨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내일 얘기해주마.”
“…왜 내일이죠?”
“너 지금 들으면
반박할 거잖아.”
“…….”
“그리고
오늘 너는
살짝만 흔들려도
울 것처럼 생겼다.”
나는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서러운 것도 아니고
정말로 왜인지 모르게
눈이 뜨거워졌다.
아저씨는 컵을 내 쪽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자.
오늘은 거기까지.”
천막 안으로
조용한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아저씨 말이 다 이해된 건 아니었지만,
어딘가에서
말랑하게 무너지는 느낌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 말을 듣고도
내 안에서는 쉽게 인정되지 않는 무언가가 꿀렁거렸다.
나는 컵을 내려놓고 말했다.
“…근데요 형.아빠가 나를 오해하는 건
진짜잖아요.”
아저씨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래, 진짜지.”
“그럼… 내가 억울한 것도 진짜고요.”
“그것도 진짜지.”
“그런데 왜 자꾸
‘내 문제’처럼 말해요?”
아저씨는 씩 웃더니
지팡이를 툭 바닥에 내려놓았다.
“왜냐면—
억울한 감정은 ‘사건’이고,
그걸 품고 사는 건 ‘선택’이거든.”
나는 고개를 젓고 말했다.
“근데요, 아빠가 나를 오해하지만 않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의자를 앞으로 끌어왔다.
내 눈높이와 딱 맞출 정도로.
“맞아. 안 힘들었겠지.”
“그쵸?”
“근데 그건‘아빠가 달라져야 한다’는 가정이지.”
“…그게 왜 문제예요?”
아저씨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너 지금,네 기분을 ‘아빠의 변화’에 걸어놨다는 뜻이야.”
“…그게 뭐 어때서요.”
“뭐 어때서냐고?”아저씨는 웃음을 참는 듯했다.
“그건 네 인생의 핸들을 남한테 넘겨주는 거다.
그렇게 살면 평~생 흔들린다.”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아저씨는 이어서 말했다.
“아빠가 너를 오해한 건 사실이다.
근데 ‘그 오해 때문에 네가 어떤 아이가 되는지’ 그걸 결정하는 건 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근데요 형. 억울한데 어떻게 안 억울해요.”
“억울한 건 느껴도 된다.”
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근데 억울함을
‘정체성’으로 만들지는 마라.”
나는 눈을 치켜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저씨는 내 어깨를 톡 눌렀다.
“억울함은 감정이고,
넌 사람이다. 둘을 섞어버리면
감정이 너를 끌고 다닌다.”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아저씨는 다시 컵을 채워주며 말했다.
“너 지금 알아야 할 건
‘누가 잘못했냐’가 아니라
‘너는 어떤 아이로 살고 싶냐’다.”
그 말은 어딘가 가슴 밑바닥을 눌러왔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어떤 아이예요, 형?”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말했다.
“그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지.
네가 정해야 하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납득된 건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살짝 풀리는 소리가 났다.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었다.
오늘은 그만 가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근데 형.
아직 잘 모르겠어요.”
“몰라도 된다.” 아저씨는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모르는 채로 가는 것도 길이다.”
그리고 문가로 나를 안내하며 덧붙였다.
“또 답답하면 오고.”
나는 천막을 나서기 전 한 번 더 아저씨를 바라봤다.
“형.
오늘 얘기…절반밖에 이해 못 했어요.”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절반이면 충분하지.인생은 원래 절반씩 이해하면서 가는 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내 발걸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등 뒤에서
아저씨 목소리가 마지막 한 줄로 따라왔다.
“야, 이놈아
상처는 네가 사는 방이 아니라
네가 지나가는 문이야
거기 오래 앉아있지 마라.”
그 말이
조용히 내 등을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