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우정

이상한 골목 상인

by 아르칸테

4장.우정

학교 운동장 뒤편은
늘 우리가 모여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오늘 그 자리는
누군가 발로 차 부순 모래성처럼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친구와 멀어진다는 건
폭발음처럼 크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과 의리가 깨지는 소리만
조용히 귀에 남는다.

나는 그 금 간 소리가
아직 귓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괜히 운동장 끝을 기웃거리다
혼자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화가 난 것도 아닌데,
슬픈 것도 아닌데,
무언가 허전하게 빠져나간 느낌.

그날 밤,
나는 다시 골목을 찾아갔다.

천막 문을 젖히자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이쿠, 오늘은
얼굴이 아주… 개운하게 망가졌구만.”

나는 찡그렸다.
“형. 저… 아니, 아저씨.
저 오늘 좀… 더 별로예요.”

아저씨는 주전자를 올려놓으며
내 표정을 한참 보더니
불쑥 물었다.

“그래, 이름이 뭐냐?
맨날 ‘야, 이놈아’라고 부르기도 지겹다.”

나는 멈칫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살짝 쿵 내려앉았다.

“…준호요.”

“그래, 준호.”
아저씨는 내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더니
의자를 하나 끌어왔다.
“준호야. 오늘은
사람한테 물린 얼굴이네.”

나는 화가 난 듯 말했다.
“사람한테 물린 건 아닌데…
그냥 친구랑 좀 틀어졌어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리가 금 가는 날은
대부분 싸워서가 아니고,
‘말이 어긋난 자리’를 너무 오래 두어서야.”

그 말에
내 속 어딘가가 움찔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너희 둘 중 하나가
한마디만 더 천천히 했으면
오늘 일은 안 벌어졌을 거라는 뜻이지.”

나는 숨을 삼켰다.
정말 그랬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늦게 말했고
한 걸음 빨리 오해했다.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호야,
친구랑 틀어지는 건
싸움이 아니라
‘오해가 방치된 시간’에서 시작된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정과 의리가 깨지는 그 작은 소리가
또다시 귀에서 울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형?”

아저씨는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글쎄.
그건 너희 둘이
‘어떤 관계였는지’부터 먼저 봐야지.”

아저씨는 컵에 물을 따르더니
나에게 묻는 대신
아주 느린 톤으로 물었다.

“준호야.
너희 둘 사이에
뭐가 먼저 깨졌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말이요.”

“말이 먼저 깨졌다는 건
둘 중 하나가
자기 마음을 안 들여다보고 말했단 뜻이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나였을까? 아니면 걔였을까.’

아저씨는 내 표정을 보더니
조용히 웃었다.

“둘 다다.”

“…네?”

“관계라는 건
잘못을 나눠 갖는 게 아니라
오해를 나눠 갖는 거다.
둘 중 하나만 잘못한 관계는 거의 없다.”

나는 손을 꼭 쥐었다.
그 말이 조금 억울하게 들렸다.

“…저만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지팡이로 바닥을 탁— 하고 쳤다.

“그 말이 문제지.”

“왜요?”

“‘누가 더 잘못했냐’로 가기 시작하면
이미 관계는 돌이키기 어렵다.
그건 싸움의 언어지,
관계의 언어가 아니거든.”

나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준호야.
너네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걔가요.
저한테 내가 안 한 일을 했다고 했어요.”

“그래?”

“제가 어떤 말을 했다고,
그 말을 누가 들었다고…
근데 저는 진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는 억울하고.”

“…네.”

“근데 걔는
자기 말이 맞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서로 말이 안 맞아요.”

아저씨는 지팡이를 뒤집어
끝부분을 바닥에 가만히 대며 말했다.

“준호야.
오해는 말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나는 멍했다.

“…그럼 뭐 때문에 생기는데요?”

아저씨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첫째,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두 번째 손가락.

“둘째,
‘기대’ 때문에.”

세 번째 손가락.

“셋째,
‘서운함’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말 때문이 아니라고요?”

“말은 그저
등판한 선수일 뿐이지.
경기를 만든 놈들은
항상 마음 속에 숨어 있어.”

아저씨의 말이
천천히 내 머리에 흘러 들어왔다.

“준호야.
너희 둘 사이에 끼어든 건
말이 아니라
너희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의 그림자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저는 그냥 억울했는데…”

“그래.
근데 그 억울함 안에도
‘왜 나를 그렇게 봤지?’라는
서운함이 들어 있지?”

나는 얼어붙은 듯이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 말은
정확했다.
정말 정확해서
도망칠 곳이 없었다.

아저씨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조용히 말했다.

“준호야.
친구와 멀어지는 건
의리가 깨져서가 아니라—
그 의리를 이루던 ‘너희 마음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다쳤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 말을 잃었다.

아저씨는 내 표정을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바깥을 가리켰다.

“너희 둘은
같은 길을 걷고 있었어.
근데 오늘,
너희 마음이 서로 다른 길로 꺾인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아저씨는 나에게 의자를 당겨 앉히고
천천히 말했다.

“먼저—
너 자신부터 봐야지.”

“저요?”

“그래.
너는 지금 친구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나를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는 충격
상처받은 거다.”

그 말이
내 가슴 아래쪽을
아프게 쿡 찔렀다.

나는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형.
저…
그 친구랑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아저씨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지팡이를 쥔 손가락을 톡 두드리며
천천히 말했다.

“그건
네가 아니라
너의 ‘마음’이 결정할 일이다.”

“…무슨 뜻이에요?”

“너는 지금
‘다시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과
‘다시 상처받기 싫다’는 마음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이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정확했다.

아저씨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준호야.”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는
대답을 찾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을 먼저 앉혀야 한다.
그 다음이
친구든 관계든
다 얘기가 되는 거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형.
오늘은 뭐 해야 돼요?”

아저씨는 짧게 웃었다.

“오늘은
네 마음을 ‘변명’하게 두지 마라.
그리고 네 상처를
‘심판’하게 두지도 마라.”

“…그럼요?”

“그냥—
살짝 아파해라.
사람이니까.”

나는 그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천막 안은
조용했다.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물의 온기가
손끝에서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분명히 느꼈다.

내 안에
조용히 흔들리던 무언가가
조금은
가라앉고 있다는 걸.

“그래서 뭐가 있었는데?”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형.
오늘 체육 시간에…
걔가요, 제 얘기를 뒤에서 막 하고 있었어요.”

“어떤 얘기?”

“제가…
그 애를 욕했대요.”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너 욕 잘하냐?”

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요!
진짜 한 적이 없어요.
근데 걔가 자기 친구들한테
‘준호가 나 욕했다더라’
이렇게 말한 거예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는 당황했고.”

“…당황보다…
뭔가 확 무너졌어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걔가 나를 그렇게 믿지도 않았다는 게…
더 억울했어요.”

아저씨는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톡— 두드렸다.

“그래.
여기까지는 사건이고.”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근데 준호야,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너희가 뭐라고 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말하게 되었는가’다.”

“왜냐구요?”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사실을 말하면 끝나는 거잖아요.”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건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둘러싼 감정의 해석이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또 어려워지네…”

아저씨는 웃었다.
“그럼 쉽게 말한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첫째.
걔는 ‘네가 나를 싫어한다’는 두려움을
이미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저씨는 두 번째 손가락을 올렸다.

“둘째.
걔는 네가 자기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기대를
깨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손가락.

“셋째.
너희 둘 사이에는
말하지 않은 서운함이 있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말했다.

“…저는 전혀 그런 생각 없었는데요.”

“그래, 너는.
근데 걔는 다를 수 있지.”

나는 헛웃음을 쳤다.
“형.
그럼 결국…
제가 뭘 잘못했어요?”

“아무 잘못도 안 했을 수도 있다.”
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근데 문제는—
너는 지금 잘못을 찾고 있다.

나는 대번에 반박했다.
“형, 당연히 찾죠!
저한테 누명이 씌여졌는데
제가 가만히 있으면 바보죠.”

아저씨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바보가 되는 건
가만히 있어서가 아니라—
‘상처를 증명하려 드는 마음’에 머무는 거다.”

나는 말을 잃었다.

아저씨는 좀 더 깊이 설명했다.

“준호야.
걔가 너를 오해한 건
사실이다.
근데 너는 지금
그 사실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다.”

“…그럼 뭐 때문에요?”

‘친구라면 나를 그렇게 안 볼 텐데’라는 기대가 깨져서 괴로운 거다.”

나는 입을 벌린 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확했다.
말도 안 되게 정확했다.

아저씨는 말했다.

“친구는
너를 오해한 게 아니라—
너를 두려워한 거다.
네가 자신을 떠날까 봐.

나는 멍하게 앉아 있었다.
처음 듣는 말인데,
어딘가 가슴 밑바닥을 쿡 찌르는 감각이 있었다.

“…형…
그게 진짜일까요?”

아저씨는 미소 지었다.

“준호야.
사람이란 건 말이다,
마음이 불안하면
현실을 자기식으로 왜곡해버린다.”

“근데 그 왜곡 때문에
제가 욕먹고 오해받았잖아요.”

“그래.
그건 억울하지.”

“그쵸?
그러니까 걔 잘못도 있는 거잖아요?”

아저씨는 잠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준호야.
잘못은 ‘둘 다’ 있는 게 맞다.
근데 그 잘못의 크기는
서로 나눠 가져야 한다.”

“…나눠요?”

“그래.
친구가 너를 오해한 건 그의 몫.
근데 그 오해 때문에
너 자신을 무너뜨린 건 너의 몫.”

나는 숨을 삼켰다.

아저씨의 말이
절반은 이해되고
절반은 여전히 아득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형.
그러면 저는 이제 뭐 해야 돼요?”

아저씨는 컵을 내 앞에 밀어주며 말했다.

“준호야.
상처는 ‘복수’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이해’로 풀린다.”

나는 그 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천천히, 무게 있게 말했다.

“기억해라.
오해는 사실을 말한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마음을 들여다볼 때 풀린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준호야.
친구를 다시 붙잡고 싶으면
네 진실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그 아이의 두려움을 먼저 봐라.
두려움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진짜 친구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무언가 절반 정도는
확실히 이해된 느낌이 들었다.

천막 안의 온기만이
내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씩 눌러 가라앉히고 있었다.

아저씨는 천막 구석으로 가더니
낡은 상자 하나를 뒤적였다.

“준호야.
너한테 줄 게 있다.”

나는 멀뚱히 바라봤다.
아저씨는 손을 꺼냈다.
그 손에는 작은 실뭉치가 들려 있었다.

아주 가늘고,
여기저기 엉켜붙은 채
서로를 끌어당기다 끊어진 꼬인 실.

“…이게 뭐예요?”

아저씨는 실뭉치를 내 손에 얹어주며 말했다.

“이게 지금 너희 관계다.”

나는 실뭉치를 들여다보며 찡그렸다.

“…형,
뭐 이렇게 꼬였어요?”

“그렇지.
마음이란 건
작은 오해 하나가 들어오면
순식간에 엉켜버린다.
근데 말이다—”

아저씨는 실뭉치를 살짝 흔들었다.

“엉킨 건
끊어버리면 끝이 아니라
천천히 풀면
다시 이어지는 법이다.

나는 가만히 실뭉치를 쥐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데
손끝에 묘하게
따뜻하고도 차가운 감각이 전해졌다.

아저씨는 덧붙였다.

“이 실은
억지로 당기면
바로 끊어진다.
근데 천천히 잡고 있으면
풀릴 자리를 스스로 내어준다.”

“…그래서요?”

아저씨는 말했다.

“준호야.
너희 우정도 그렇다.”

나는 들고 있던 실뭉치를
조심스럽게 비틀어보았다.
얼기설기 엉켜 있었지만
한 가닥을 잡으면
조금씩 벌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저씨가 말했다.

“너는 지금
친구를 설득하려고 하면 안 된다.
대신—
‘어디부터 풀릴까’를 먼저 찾아야 한다.”

“…어떻게 찾아요?”

“서운함을
사실로 풀지 말고,
이유로 풀면 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 질문이
풀리는 지점을 데리고 온다.”

나는 실뭉치에서
살짝 늘어진 부분을 잡아
가볍게 당겨봤다.
조금 열렸다.

아저씨는 내 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밀지도 말고
힘으로 당기지도 말고.
그저
‘이해하려는 손’으로 만져주면 된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준호야.
기억해라.”

천막 안의 불빛이
그의 주름진 얼굴을 조용히 비췄다.

오해는
서로를 단단히 묶는 게 아니라—
풀라고 존재하는 매듭이다.

그 한 줄이
조용히 가슴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저씨는 내 등을 밀었다.
“가라.
오늘은 그 마음만 들고 가면 된다.”

나는 실뭉치를 손에 쥔 채
천막 밖으로 걸어나왔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손안의 작은 실은
이상하게 온기가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
친구에게 먼저 말해야겠다.’

그 말은
사과도 아니고,
해명도 아니고,
억울함의 증거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 실뭉치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왜 그랬는지
물어보기부터 해야겠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절반쯤은
가벼워졌다.

나는 실뭉치를 주머니에 넣고
조용히 집으로 걸었다.

오늘 밤,
누구와도 싸우지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내 자신과도.

그리고 그 조용한 여운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풀리는 마음’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