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마지막 방문

이상한 골목 상인

by 아르칸테

욕심에 대한 토론 겨울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학교 운동장엔 이상하게 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스무 살.그 단어는 내 어깨에 기대는 바람처럼 낯설고,
뒤에서 밀어붙이는 손처럼 익숙했다.

졸업식 전날,나는 가방도 들지 않은 채
그 골목을 향해 걸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어릴 때처럼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어딘가엔 말하지 못한 질문 하나가
조용히 남아 있었다.

“욕심…그건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하는 걸까.”

천막 골목에 다다랐을 때,
상인은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똑같아 보이는데 뭔가 달라 보였다.

아마 달라진 건 나였겠지.

상인은 나를 보자마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어이 오랜만이다.”

나는 웃었다. 예전처럼 어색하지 않은 웃음이었다.

“보고 싶어서 왔어요.”

상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이 말했다.
‘그래, 이제 왔네.’

나는 상자 옆에 앉았다. 바람이 천막을 스쳤다.

“아저씨…저한테 아직 안 끝난 질문이 있어요.”

“그래, 말해봐라.”

나는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욕심.왜 사람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요?
아니…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상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조각을 꺼냈다.

그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나무 블록이었다.

상인은 내 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욕심은 없애는 게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거지.”

나는 그 말을 한참 동안 씹었다.

“방향…?”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이란 건 원래 불이야. 불은
끌 수도 있고, 태울 수도 있고,밥을 지을 수도 있다.하하하”

상인은 나무 블록을 탁 소리 나게 굴렸다.

“욕심을 없애려 하면 불을 손으로 끄겠다는 건데. 결국 손만 데이지.”

나는 나무를 굴리며 말했다.

“근데…욕심을 그냥 두면 저를 잡아먹잖아요.”

“그래.바로 그거다 그게 문제지.”

상인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작은 원을 그렸다.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 왜요 뭔데요??”

상인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쳤다.

“하하하하 바로 욕심이!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상인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욕심은 목표가 되는 순간 너를 끌고 가고. 너는 주인이 아니라 끌려가는 소년이 된다.”

“그럼…욕심은 뭐가 돼야 돼요?”

상인은 조용히 말했다.

욕심은 방향.목표는 너다.

나는 그 말을 마음 깊은 곳에 박아 넣었다.

“그 둘이 바뀌면 사람은 망가지고,그 둘이 제자리에 있으면 사람은 자란다.”

상인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싶다 욕심을 버리려 하지 말아라.”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상인은 내 손바닥 위의 나무 조각을 가리켰다.

“네가 원하는 삶을 ‘태우는 불’로 써라. 남을 태우는 불이 되지 말고.”

나는 그 말이 완전히 회오리처럼 가슴에 들어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조용히, 정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욕심을 부려도 돼요?”

상인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명확했다.

“당연하지!! 욕심 욕심 없는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
다만”

상인은 나무 조각을 뒤집으며 말했다.

“네가 가진 욕심이 너를 꺾으면 악이고, 너를 움직이면 선이다.”

바람이 골목을 한번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나의 지난 시간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걸 느꼈다.

넘어지고,도망치고,후회하고,다시 일어났던 시간들.

그런데 문득 마음속에서 답답함이 또 올라왔다.

“…근데요 아저씨.”상인은 고개를 들었다.

“욕심이요…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는 두 손을 꽉 쥐었다.

“뭔가 너무 갖고 싶어요. 아무리 아닌 척해도 배 속에서 계속 올라와요.
근데 그러면 막… 질투나고…환경 탓하게 되고…왜 나는 저기가 아니지?
왜 나는 이렇게 늦지?” 말이 길어질수록 숨도 빨라졌다.

“꿈은 큰데…막상 하려 하면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해야 할 것들 생각하다 보면 머리만 꽉 차고 손은 아무것도 못 해요.”

나는 바닥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서 욕심이 너무 큰 건가 싶기도 해요.”

상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내 속마음을 더 깊게 꺼내게 만들었다.

“아저씨… 욕심이 크면 사람이 망가져요?”

상인은 그제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욕심이 큰 게 문제가 아닐껄?하하하하.”

그는 나무 조각을 손가락 끝으로 굴렸다.

문제는 큰 욕심을 ‘한 번에 이루려고’ 하는 마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상인은 내 눈높이에 맞춰 말했다.

“큰 산도 한 번에 오르려고 하면 벽처럼 보이고,사람은 겁에 질려 멈추지 아마 한번에 해낸 사람은 신이 아니라면 전세계 1%로일 꺼다 하하하 ”

상인은 손바닥으로 바닥의 흙을 쓸었다.

“준호야,네가 가진 가장 큰 착각은 ‘욕심을 실현하는 법을 몰라서 못 움직인다’는 게 아니야.”

“그럼..요?” 상인은 단호히 말했다.

너는 아직 ‘첫 걸음’이 어떤 건지 모르는 거다.

나는 숨을 멈춘 듯 상인을 바라봤다.

상인은 말했다.

“욕심은 불이다. 하지만 그 불을 켜는 첫 불씨는 항상 작고, 별것 없어 보이고,남들이

보면 시시해 보이는 선택이지.”

그는 손가락으로 나무 조각 한 귀퉁이를 가볍게 눌렀다.

“산을 오르기 전에 해야 하는 건 산을 보며 절망하는 것도, 정상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신발 끈을 묶는 일이지.그게 첫 걸음이다.”

나는 그 말을 마음 깊숙이 새겼다.

그러자 상인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질투는 너도 그만큼 원한다는 신호다.
환경 탓은 네가 아직 두려워서 흔들리는 증거고.
해야 할 게 많아 보이는 건 너의 욕심이 이미 너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상인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욕심을 욕심으로 끝내는 아이는 남과 비교하며 멈추고,
욕심을 방향으로 만드는 사람은 작은 첫 걸음을 내딛는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저는 지금 뭘 해야 돼요?” 상인은 단 한 줄로 답했다.

너의 큰 욕심을 작은 시작으로 나누어라.그게 움직이는 법이다.”

바람이 천막 위를 스쳤고, 나는 묘하게 속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 안에서 오랫동안 굳어 있던 욕심의 돌덩이가
작은 모래 알갱이로 부서져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나는 작게 웃었다.

“…신발끈을 묶는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상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감각이 시작이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질문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요, 아저씨…작은 시작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상인은 내가 이 질문을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꺼냈다.

손톱만 한 크기.너무 사소해서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조각.

“준호야,이게 뭔지 아니?”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아저씨 그냥… 나무 조각 아니에요?”

상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건 ‘작은 시작’이다.”

그러고는 손바닥 위 나무 조각을 톡— 하고 굴렸다.

“큰 꿈은 항상 이런 작은 조각 하나로 시작한다.”

나는 나무 조각을 멍하니 바라봤다.

상인은 아주 천천히 설명했다.

“예를 들어볼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산 아래에서 길을 짚어주는 안내자처럼

차분하고 깊었다.

“대학을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 작은 시작은 문제집 한 쪽을 펴는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작은 시작은
하루에 한 번 정직하게 말하는 일이다.”

“아빠랑 잘 지내고 싶다면
작은 시작은 수화로 ‘오늘 어땠어?’ 라고 한 번 묻는 일이다.”

상인은 나무 조각을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돌렸다.

“작은 시작은 커 보이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고,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

그는 조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작은 시작만이 큰 욕심을 현실로 끌어오는 유일한 다리다.”

나는 숨을 길게 들이켰다.

“…그럼 작은 시작은 꿈을 쪼개는 거네요?”

상인은 내 이마를 톡 하고 건드렸다.

“오 정확해 아주 정확하다.”그리고 추가로 덧붙였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꿈이 큰 게 아니라,‘쪼개는 법’을 몰라서다.”

나는 손바닥의 돌멩이를 꼭 쥐었다.

“아저씨… 저는 그럼 지금 뭐부터 하면 돼요?”

상인은 단 한 줄로 대답했다.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부터 가장 작은 조각을 꺼내라.장담컨데 그게 너의 첫 시작이될 것이야.”

천막 위에서 바람이 지나갔고,
나는 처음으로
‘큰 욕심을 다룰 수 있는 마음’이 내 안에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