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독

혼자있어도 괜찮아.

by 아르칸테


16장.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독
혼자가 되기 위해 관계를 단련한 사람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독을 찬미하지 않았다.
혼자를 선택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분명 고독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이 둘의 고독은 니체처럼 파열되지 않았고,
칸트처럼 고정되지도 않았다.

그들의 고독은 관계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졌다.

공자는 사람 속으로 들어간 철학자였다.
군주를 만나고,제자를 가르치고,끊임없이 세상과 부딪쳤다.

그의 삶에는 고독의 장면보다 관계의 장면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공자의 말은 항상 이상할 만큼 단단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공자는 관계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자의 고독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혼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았고,권력의 부름에도
자기 기준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많이 좌절했고,자주 밀려났다.

그러나 그는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

공자의 고독은 사람을 떠나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끝까지 지켜낸 태도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혼자 살지 않았다.제자를 두었고,정치를 논했고,현실을 연구했다.

그의 철학은 언제나 공동체를 향해 있다.
윤리도,행복도,덕도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명히 말한다.

사유는 혼자서 이루어진다고. 여기서 말하는 혼자는 고립이 아니다.

관계를 끊는다는 뜻도 아니다. 그가 말한 혼자는

판단의 순간에 자기 책임을 혼자 짊어질 수 있는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고독은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내적 거리였다.

그래서 그는 감정과 충동을 덕으로 조율했고, 행동을 습관으로 단련했다.

그 결과 혼자 있을 때도, 사람들 속에서도 같은 판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들은 고독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고독을 관계의 반대편에 두지 않았다.

대신 관계를 통해 고독을 훈련했다.

말을 삼키는 순간,한 발 물러서는 태도,지금은 나서지 않는 선택,기다리는 판단.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고독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고독은 외롭지 않다. 비장하지도 않다.

오히려 차분하고, 현실적이며,오래 간다.

이 책이 말하는 고독은 바로 이 지점에 가깝다.

혼자 되기 위해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도 자기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힘.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힘이 관계 훈련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덕을 목표로 삼았고,판단을 목표로 삼았고,삶의 균형을 목표로 삼았다.

고독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결과였다.

이 장에서 꼭 남기고 싶은 문장은 이것이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을 때 생긴다.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극단을 요구하지 않는다.혼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고,

관계에 매달리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묻는다.

“너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 자신으로 남아 있는가.”

이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고독을 잘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이 말하는 가장 현실적인 고독의 형태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배웠다.

인간은 ‘나’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생각은 늘 더 큰 공동체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간의 사유는 내 생각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재료를 어떻게 다루느냐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 생각은 단지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다른 방향의 사고일 뿐이다.

반대로 내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혼자만의 생각은 쉽게 허상이 된다.

그래서 생각은 나누어야 하고, 부딪혀야 하고,조율되어야 한다.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내 생각과 비교하고,그 과정에서
혼자 다시 돌아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고독은 생각을 고립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을 걸러내는 시간이 된다.관계 속에서 얻은 생각을

고독 속에서 정리하고,다시 관계 속으로 가져가는 것.

이 순환이 반복될수록 생각은 개인의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진다.

그렇게 조율된 생각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공동체와 연결된 생각이 된다.

나는 이것을 일류의 생각이라고 부른다.혼자서 떠올린 생각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얻고,고독 속에서 다듬어진 생각.

그래서 고독은 사유의 끝이 아니다. 사유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혼자 생각하기 위해 관계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생각하기 위해 고독을 거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