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왔다. 고속도로가 어마어마하게 밀렸고 장안 휴게소의 설익은 소떡소떡도 장사진에 겨우 사먹었다. 아무튼 오게 된 전주. 나에겐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영화를 보며 쌓인, 특정한 곳에서의 애틋한 기억들 때문에 이 세련됨으로 중무장된 영화의 거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 나에게 이곳은 삼백집 꽈베기 같은 곳이라서... 혼자서 영화를 보러 먼길을 떠나온 그 때. 그리고 다음엔 친구랑 왔던 일. 우연히 대학 선배를 식당에서 만난 일. 정성일 팬클럽 회원 언니를 우연히 본 일. 영화의 거리에서 대학원 교수님을 우연히 만난 일. 대학원 선배와 커피를 마신 일. 너무나 대단한 스페인 감독이 길에 기대어 담배를 피는 걸 스치듯 본 일. 그런 많은 시간들이 지나 정말 오랜만에 다시 왔다.
십여년전에 본 그 많은 얼굴들을 아직도 기억하기는 한다.
이제 영화제에 오면 무언가 새로운 추억같은 것을 만들 수가 없게 되었다. 길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졌으니. 피곤해서 러닝타임의 반을 자느라 내용을 놓치는 일도 안생긴다. 친구와 히히덕 거리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지 않게 되었으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만 이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는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