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지 않은 삶에는 유난히 투병의 시간들이 많았다.
피붙이들의 투병은 결코 잊히지 않아,
병과 아픔, 삶과 죽음은 나에게 깊은 흔적으로 남았다.
수년 전 부산 아미동.
내리쬐는 여름 볕 아래로, 좁은 골목길이 굽이굽이 흐르는 풍경은 이따금 불청객처럼 떠오른다.
창문 밖 세상과 병실 안 풍경이 너무나 달라서 바깥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하고 아득하기만 한 풍경이었다.
어디가 꿈이었을까,
내가 서 있던 풍경이 악몽의 한 장면이었길.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두 번이나 겪을 줄이야.
심지어 내 배로 낳은 핏덩이와 함께.
임신초기는 정말 무탈하고 평범했다.
좀 많이 졸리고 적당히 심한 입덧과 아무런 이벤트 없는 정기검진.
항상 "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만 들으며 돌아와서 당연하게 느끼던 나날이었다.
어쩌다 온라인에서 힘겨운 임신, 출산 이야기를 보게 될 때서야 새삼 이게 감사한 일이구나 싶었다.
타고나길 걱정인형인지라, 그래도 정밀 초음파를 앞두고는 꽤 긴장되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떡하지, 평소와 달리 불안하고 초조했다.
얼굴도, 손가락 발가락도, 다른 장기들도 다 문제없다던 의사 선생님이 어느 순간 같은 부위를 여러 번 돌려봤다.
검사 시간이 안내받았던 시간을 넘어가고
다른 선생님을 호출하는 통화를 들으며,
오히려 불안은 사라지고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알 수 없던 미래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기에.
아기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어느 날의 창문 속 풍경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고작 몇 센티(?)라는 심장에 무슨 이상이.. 왜..?
심장은 임신초기에 만들어진다는데,
혹시 내가 회사일로, 집안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거였을까?
왜 하필 나에게,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자연치유가 되기도 한다는데 그럴 수 있는 거 아닐까?
... 근데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나마 천운이었던 걸까, 다니던 병원에서는 서울의 대형병원과 진료연계가 가능했다.
돌아보면 전공의 파업으로 어려운 시국에 기다림 없이 진료를 받은 건 분명 큰 행운이었다.
초음파로 미리 알고 빠른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큰 축복이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아기는 정밀초음파에서 심장 이상이 나왔고,
바로 다음 주 마침 협력병원의 교수님께서 내려오셔서 다시 검사할 수 있었다.
이상은 확실시되었지만 아직 태아가 너무 작기 때문에 막달에 다시 검사가 필요했다.
현재 징후를 보이거나 가능성 있는 여러 병명들을 들으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대비하고 싶었다.
출산 직후 아기가 바로 수술받거나 NICU에 들어가야 할 경우는 대학병원에서 출산해야 한다고도 했다.
태어나 처음 듣는 병명과 복잡한 의료용어들,
충격과 슬픔, 불안과 분노까지 소용돌이치는 감정들.
더 알게 될수록 더 깊고 어두운 수렁으로 끌려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