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었고, 할 수 없었다

by 홍노을

마음속 깊은 곳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은 채로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출산할 경우를 생각하면 4시간 거리의 서울보다는 인근 지역이 나을 것 같았다.

의뢰서를 받아 이름 높으신 교수님께 진료를 받았지만, 역시나 같은 병명과 유사한 선택지만 들을 수 있었다.

자연 치유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수술은 불가피하다는 친절하고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에겐 기적을 기다릴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두 달 남짓의 시간 동안 생각하고, 기도하고, 회사에 가고, 그렇게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저녁마다 맘카페, 환우카페에 들어가 진료 후기와 치료 과정을 찾아보았다.

몰랐던 정보들을 머릿속에 욱여넣을 때마다 가슴에 얹힌 추는 무게를 더해갔다.


막달을 기다리는 두 달간 흘린 눈물이 얼마였는지, 세어보진 못해도 1리터는 족히 넘지 않았을까.

이맘때에는 일하다가도, 운전 중에도, 잠결에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했다.

명치에 갇혀있는 뜨거운 무언가가 시시때때로 치밀어 올랐다.

세상을 보는 나의 마음도 비뚤어졌는지,

아이와 함께 가는 가족을 마주치면 부러움에 괜히 시선을 돌려버렸다.

저만큼 아이를 키워 함께 걸어 다니는 미래가, 나에겐 너무나 아득하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감히 허락되지 않은 미래를 멋대로 상상하고 좌절하는 무력감은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앞선 투병을 지켜보는 동안 내가 평생 흘릴 눈물을 모두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렇게나 눈물 쏟을 일이 나를 기다릴 줄 참으로 몰랐다.

신이 있다면 너무 무정하고 운명이라면 너무 가혹하다고 느꼈다.


자라나는 배 속 아기가 느껴질 때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만나지도 못한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꿈에 나오기도 했다.

덕분에 나도 조금씩 엄마로 자라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든 의연한 자세로 아기를 만날 각오를 하고 이성과 합리로 판단하기로 다짐했다.

인생에 또다시 주어진 아주 어려운 과제라고,

우리는 단지 최선을 다해 매 순간 판단과 선택을 하며 묵묵히 헤쳐나가는 것뿐이라고.

그래,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데, 아직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손바닥만 한 핏덩이는 무슨 죄인 걸까?

나의 죄를 네가 가져간 걸까?

나는 무슨 죄를 이리도 많이 지었나?


막달 검사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날,

부쩍 자라 강력한 발차기로 엄마를 단련시켜 준 아기 덕분에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정말 여행 같았다.

맛집도 가고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며 그렇게 웃으며 다녀왔다.

다행히 출생 즉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아니라서 일반병원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

그 외에 달라진 건 없었다.

치료 방법이나 수술 횟수가 결정된 것도 없었다.

태아 상태의 검사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명과 치료방향은 아이가 태어나야만 알 수 있었다.

우선 출산 병원에서 초음파를 본 후 진료일정을 잡아도 된다기에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복합 심장질환, 수 차례의 수술 등 가능성으로 겁은 줬지만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믿음으로 간은 흘러갔다.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우연은 불현듯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