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에 대한 두려움에 아이의 심장 이슈까지 더해져 제왕절개 분만을 선택했다.
딱히 믿지는 않았지만 출생일시와 사주를 받았다.
그때 철학관에서 희한한 이야기를 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얼핏 보면 좋지 않은 사주로 알 수 있다고.
쉽지 않은데 정말 좋은 사주 맞으니까 추천한다고.
주위에는 날을 받아도 그날에 낳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었기에, 오히려 큰 고민 없이 추천 안을 선택했다.
내심 정말 아이의 운명이라면 날을 받은 대로 만날 것이고,
제 운이 아니라면 알아서 다른 날에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어쩌면 ‘쉽지 않다’는 그 말속에 이미 시작된 우리의 험난한 여정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수술실이 밀려서 사주가 바뀌려나 싶었지만, 딱 맞춰서 그렇게 특별한(?) 사주에 태어난 아기.
아픈 아이여서 그런지, 수술실에서 들린 울음소리가 우렁차지 않고 너무 애처로웠다.
마취약에 취해 몽롱한 와중에도 걱정되어, 후처치를 하시던 간호사 선생님에게 물은 기억이 남아있다.
가냘픈 울음소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 빨리 내 눈으로 직접 아기를 보고 싶었다.
밤새 배가 찢어지고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몸을 움직이는 연습을 했다.
오후 4시가 넘어 수술하고 다음날 아침 소변줄을 빼자마자 두 발로 걸어서 아기를 보러 갔다.
엄마는 강했다.
드디어 품에 안아본 나의 아기.
도무지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사랑스러웠다, 경이로웠다 이런 단어만 떠오르는 나의 표현력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나와 한 몸이었던 아이를 품에 안고 처음 젖을 물리던 순간, 그 충만함과 행복감은 내가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사람이 맞나 싶게 작은 몸집, 작은 얼굴에 제자리를 가진 눈코입, 신기한 듯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 너무 가벼운데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의 무게까지.
이 아이가 나에게서 생겨났다는 것,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픈 본능,
당시의 모든 감정들이 낯설었다.
그리고 강렬했다.
아이의 존재를 통해, 나 자신의 존재감을 살아오며 가장 강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경이로웠던 아이는 첫 숨을 내뱉은 다음날 검사를 했다.
서울의 협력 병원에서는 퇴원하자마자 바로 외래로 오라고 했다.
슬프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아직 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잘 안을 줄도 모르는데 갓난아기를 데리고 서울이라니.
시급하거나 심각하지 않아서 일반 병원 출산을 허락한 것이 아니었던 걸까.
일정을 조금이라도 미뤄보려 했지만 오히려 병원 담당자는 황당해했다.
수 차례 질문 끝에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답을 듣고 나서야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 조그만 아이가 5시간 동안 차를 탈 수 있나?
아니면 3시간 동안 기차를 탈 수는 있을까?
조리원 입소를 미루고 출산 병원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초보 엄마가 서울까지 다녀오려면 속성으로라도 신생아 케어를 손에 익혀야 했다.
후불이라던 제왕절개의 통증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슬퍼할 새도,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렇게 생후 7일밖에 되지 않은 핏덩이를 품에 안고 기차를 탔다.
열차 안 수유실에 자리가 없어 화장실에서라도 수유를 하려다가, 친정엄마가 기겁을 하고 쫓아오시기도 했다.
때마침 수유실을 이용하던 아기 엄마는 갓난아이 울음소리 같다며 문을 열어 보시고는 얼른 들어가라며 양보해 주셨다.(감사했습니다)
서울의 대형병원은 내부 공사까지 하고 있으니 미로가 따로 없었다.
수유실을 찾아 한참을 헤매느라 제때 물리지 못한 모유로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아기는 아직 한 번에 충분히 먹지도 못하는, 수유조차 어색한 갓난쟁이였다.
갓난(?) 엄마도 얼빠진 얼굴로 아기를 안고 외래 진료를 기다렸다.
옆에 앉아 계시던 분이 말씀을 건네셨다.
그분의 아이는 우리 아기와 비슷한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고, 몇 번의 수술 끝에 완치되었다고 했다.
정기 검진을 왔는데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혼자 성큼성큼 진료실로 들어갔다고.
강물처럼 잔잔하고 깊은 인상을 가진 분이셨다.
“잘 이겨낼 거예요. 다 지나갈 거예요.”
모진 시간을 지나왔을 위로는 살짝 건조한 듯 따뜻했고, 또 꽤나 지친 듯 들려왔다.
내가 너무 지쳐서 그랬을까.
아니면, 자식의 아픔을 지켜봐야만 했던 엄마들은 다들 비슷한 얼굴을 하게 되는 걸까.
셀 수 없는 눈물을 세월의 강물에 흘려보내며 지쳐버린 표정, 그러나 단단한 눈빛을 가진.
출생 후 외래 검사로 진단명과 치료 방향이 확정되었다.
벌써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더 좋은 예후를 위해 가능한 빠른 수술이 필요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한 번의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아기는 이날, 태명을 벗고 세상 속에서 처음 제 이름으로 불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