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라는 슬픔

by 홍노을

임신 초기만 하더라도 조리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도, 지인도, 주위 모두가 만류했고 결국 뒤늦게 일주일을 신청했다.

서울로 외래를 다녀온 후에 조리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곧 수술을 앞둔 갓난아기를 신생아실에 두고서, 혼자 커다랗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출산 후 요동치는 호르몬에, 인생의 파도까지 뒤흔드니 도무지 편안하지 않았다.

모자동실로 아기와 오후 내 같이 있고 싶었지만 조리원에서 허락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정해진 시간에만 수유와 모자동실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옆 방에 있는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 눈이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조리가 아니라 셀프 감금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픈 아이를, 나 편하자고 남의 손에 맡겨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어느새 불안과 우울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바닥이 없는 깊은 늪에 빠진 것 같았다.

수술하면 한동안 안아주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있고픈 마음.

한 달가량 예상되는 치료기간을 보호자로 버티려면, 일주일이라도 쉬어서 몸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

무엇이 이성이고 감성인지도 모른 채, 머릿속 고민은 주거니 받거니 며칠을 이어졌다.

매일 밤마다 내일은 그냥 퇴소하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겨우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이성을 되찾으면, 아침잠도 자지 않고 수유 시간마다 아기를 품에 안았다.


산후조리원에는 산모의 회복과 육아 준비를 위한 프로그램이 의외로 빡빡하게 구성되어 있다.

‘조동’이라 부르는 조리원 동기 엄마들과 알아가며 이후 육아 동지로 지내기도 한다.

나는 식사와 수유콜 외에는 프로그램 참여도, 엄마들과 대화도 하지 않았다.

조리원 신생아실에 아픈 아기는 한 명뿐이었다.

아이의 병은 죄도 아니고 허물도 아니지만, 굳이 내 입으로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 일 없는 척 억지웃음을 짓기에 나는 너무 지쳤고,

삐걱거림은 나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도 마음껏 볼 수 없는 엄마에게, 방 안은 너무 적막했고 고요한 여유는 두려웠다.

결국 할 일에 집중하도록 스스로를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수술과 육아 준비를 하며 통화와 인터넷 검색으로 보냈다.

병원과 통화하고, 녹음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남편과 의논하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조차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받아들이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닌데, 마음과 현실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

주어진 상황과 사실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출산 전 예상했던 선택지도 떠올렸다.

비로소 이 현실은 여러 가능성 중 그나마 ‘다행’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하필 우리인지’, ‘아무 일 없었더라면’, ‘기적적으로 자연 치유가 됐더라면’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은 나를 더 좀먹을 뿐이었다.

그나마 더 버거운 경우가 아니라는 것에 다행이라 느끼고 감사해야 했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환아가 한 번의 수술로 완치를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주위에는 선천성 질환으로 태어나자마자 수술한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환우카페와 병원에는 더 어려운 경우도 너무나 많았다.

슬프지만 다행이고, 힘들지만 버틸 만한, 감사한데 억울한,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당시의 복잡한 마음을 얼마 전 보게 된 한 웹툰에서 잘 표현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슬픔 위에 나의 다행이 놓여 있었다." (웹툰 ‘콩에서 새싹이’에서)


이맘때 크고 작은 후회들 중 지금까지 마음에 사무치는 것이 있다.

생후 검사에서 심장수술이 필요한 아기는 호흡이 힘겨울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당연하게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가 호흡에 무리가 있는 경우는 보통 대학병원 출산 후 바로 인큐로 들어간다.

우리는 그러한 경우가 아니었기에 일반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설명에 가까웠지만 초보 엄마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조리원 담당자에게 아이 상황을 알렸더니, 신생아실 간호사가 직수 대신 유축을 권했다.

(직수는 모유를 아기에게 직접 물리는 방식을 말한다)

직수는 아기도 힘이 많이 드니 편하게 먹도록 하자는 이유였다.

이때 고민 없이 직수를 포기한 것이 오랜 후회로 남게 되었다.

알고 보니 건강한 아기들도 대부분 직수는 힘이 들고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젖 먹던 힘까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아기는 호흡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나는 모유량이 충분한 엄마였다.

그럼에도 잘 몰랐던 나는 유축을 선택했고, 수술 전까지 겨우 며칠 유축 모유를 먹였다.

그때 더 물리지 못했던 모유는, 수술 이후 길어진 금식과 입원으로 다시는 먹일 수 없었다.

추운 병실에 혼자 있는 아기를 보며, 품에 안고 젖을 더 물리지 못했던 후회가 사무쳤다.

회복 후에도 잔병치레를 할 때마다 모유를 얼마 못 먹여서 자주 아픈 건 아닐까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아픈 아이 앞에서 엄마는 매번 죄인이 된다.


몇 번의 조율 끝에 병원에서는 가장 빠른 일정으로 수술을 잡아주었다.

정해진 수술 날은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수술의 자세한 내용과 치료 과정, 중환자실 입원 기간과 면회 방법, 이후의 병동 생활, 수술 비용 부담까지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안내에 따라 준비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다 보니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슬퍼하거나 무서워할 수 없었다.

다행이니 불행이니 따질 겨를도 없었다.

아이의 수술은 코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이미 엄마가 되어 있었다.

입원 전날, 살면서 처음으로 2주가 넘는 외박 캐리어를 챙겨보았다.

손바닥만 한 아기도 깨끗이 목욕하고, 그렇게 우리는 결전의 날을 맞이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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