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서울행은 초행길이 아니라서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생후 7일 차 핏덩이를 안고 가던 때를 생각하면, 인생 4주 차에 접어든 아기는 한참이나 어른(?) 같았다.
이미 기차역 수유실도, 병원 셔틀버스도 익숙했다.
병원에 도착한 후 순서대로 각종 검사를 받고 소아병동으로 들어갔다.
병실 창문은 한쪽 벽면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넓은 통창이었다.
창문 너머 롯데타워가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낯설었지만,
바깥을 바라보는 나의 착잡한 시선은 먼저 겪어보았던 그것이었다.
수년 전 현실감 없었던 그 풍경처럼, 여전히 병실 밖의 세상은 이질적이었다.
내가 서있던 곳은 각자의 사투를 이어가는 험지였다.
나는 또다시 그 전장에 세워진 것이었다.
이번에는 어디 그늘진 계단 끝에서 울음을 삼킬 여유도 없었다.
어린 아기와는 1분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으니.
갓난아이에게는 소아병동에서 주는 배냇저고리조차 너무 컸다.
여밈 끈을 끝까지 꽉 조여도 어깨가 자꾸만 흘러내렸다.
이렇게 작은 아기에게도 주삿바늘이 들어갈 수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힘을 준 채 바라보았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데, 그 아픔을 눈으로라도 느껴야만 할 것 같았다.
손싸개를 덮어 아기가 주삿줄을 만지지 못하게 처치해 주었다.
조그만 손이 얼굴만 한 왕주먹이 된 아기를 보고 남편은 우스워하며 사진을 남겼다.
1,2인실은 생각보다 너무 비쌌기 때문에 다인실을 택했다.
회복 속도에 따라 입원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다인실에는 우리만 있었고, 늦은 오후에 며칠 먼저 태어난 아기가 들어왔다.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처럼 수술을 앞둔 어린 아기였다.
늦은 밤, 어둑한 병실에는 숨죽인 울음소리가 번갈아가며 흘러나왔다.
수술을 앞두고 갓난아기도 금식을 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끝없는 배고픔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무리 울어도 밥을 주지 않는 어미를 얼마나 원망했을지 모르겠다.
당장 먹지도 못하는 배고픈 아이 앞에서 밤새 시간마다 유축을 했다.
수술 후에라도 먹이겠다며 유축한 모유를 얼려 놓았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간호사는 아기들이 한두 시간 울다가 지쳐서 배고픔도 잊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아기는 지칠 줄을 모르고, 밤이 늦도록 울고 자다가도 또 울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알지 못하는 아기라서, 엄마도 끌어안고 같이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 하여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필요한 일이라고 하여 미안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 밤 내내 쌓인 슬픔과 미안함은 숨 막히게 무거운 것이었다.
(그 미안함에 새벽수유를 꽤 오래 끊지 못했다)
소아병동은 보호자가 1인만 상주 가능했고, 남편은 근처의 모텔 같은 호텔에 묵기로 했다.
혼자 남아 끊임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고 달랬다.
결국 울다 지쳐 잠에 들었을 때 나도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러다 한밤 중 갑자기 울린 휴대전화 진동에 화들짝 깨버렸다.
밖에 있는 남편에게서 새벽 1시에 전화가 왔다.
발신인을 보자마자 잠결에도 머리가 차게 식고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어수선한 웅성거림이 귀를 울렸다.
그 사이로 당황 가득한 말소리가 끊기듯 들려왔다.
남편이 묵던 호텔에 불이 났고, 급하게 탈출한 상황이었다.
놀란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 때문에 통화가 잘 안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종일 이어진 긴장 때문인지 구조 소리를 못 들었고 마지막에야 겨우 나온 것이었다.
낮은 층수였기에 직접 연기를 마시진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병원에 간다는 소식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소란이 사라지자 갑자기 낯선 곳에 혼자 뚝 떨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눈앞에는 품에 다 차지도 않는 조그만 핏덩이가 주삿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잠들어 있었다.
깊은 새벽 어스름한 병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설움이 해일처럼 나를 덮쳐왔다.
이미 나는 악몽 속을 헤매고 있는데 또 일이 생길 수 있다니.
삶이 내게 주는 경고 같았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언제 무슨 일이 더 닥칠지 모른다고, 긴장을 늦추지 마라고.
당장 몇 시간 후면 저 조그만 아기의 가슴을 열고 심장을 멈추는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나에게도, 저 조그만 아이에게도, 모두에게 참 가혹하다고 느낀 밤이었다.
(물론 지금은 안다. 그 밤 매 순간이 축복과 기적이었기에 지금에 이르렀음을.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