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남편의 생각과 의견이 그렇게 궁금했던 적은.
부부로 지내온 9년 이라는 시간 동안 과연 우리가 이뤄낸 것은 무엇일까
내가 그토록 꿈꾸던 연애같은 결혼은 앞으로도 지속될수 있을까
9년 동안 각자 나이를 먹었으니 이젠 우리도 어른 다운 생각을 해야 할것 같았다.
누군가 설득하지 않아도, 맞다 틀리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어느때보다 남편의 의견이 중요했고, 어쩌면 내 생각과 같길 바랬다.
'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애기 낳아 키워보는 건 어때?'
' 요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이런 곳에서 어떻게 아기를 낳아 키워 '
' 그리고 우린 돈도 없잖아, 태어나는 아기만 고생이지 '
예상했던 대답과 말투 그대로였지만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무미건조한
남편의 반응은 결혼 9년만에 가장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고집은 여전했다.
대화내용에서 해결책을 찾고싶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나는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따뜻한 집에서 휴대폰 어플로도 충분히 집을 알아볼 수 있는 편한 세상이지만
내 발로 직접 우리가 머물 새로운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퇴근하고 부동산 몇군데를 몇날 며칠 들락거리며 알아본 곳은 평수가 넓지 않은
곳들 이었지만 그 마저도 우리 형편에는 무리였다.
보증금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아파트에서 살아보겠다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내가 한 결심은 꽤나 진지하고도 굳건했다.
20년을 훌쩍 넘어 재건축을 눈 앞에 둔 아파트.
새로 한 도배와 샷시를 내세우며 부동산 사장님은 아이가 없어보이는 나에게
이 정도면 신혼집으로 딱 이라며 귀하고 좋은 매물을 보여주는 듯 부추겼다.
허름 해 보이는 아파트지만 리모델링으로 깔끔한 그 집을 남편도 꽤 마음에 들어했다.
부족한 보증금, 새로운 살림을 다시 꾸며야하니 돈 들어갈 곳이 많아 걱정이 앞섰지만
새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듯 설레였다.
많은 고민 끝에 가게 된 두번째 신혼집은 이러했다.
리모델링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우풍은 기본이고 한파 예보라도 있는 날이면 실외에 있는
보일러가 터질까 전전긍긍 하며 지내야했다.
하지만 문이 있고 창문이 있는 방, 빨래를 널수 있는 베란다, 맘껏 요리할 수 있는
주방 다운 주방이 마련되어 있는 이 곳은 우리에게 큰 희망과 기쁨을 주었다.
결혼 9년만에 새로운 집에서 다시 맞이한 신혼은 우리 일상의 매순간을 새롭고
감사하게 만들었다.
친환경식품 마트, 유명한 프랜차이즈 빵집 단골이 되었고 번화가로 연결되어 있는
오래 된 산책길은 연애시절 자주 걷던 데이트 코스를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 이 모든것들을 이제서야 해 보다니.
소박했지만 큰 결심이었고 엄청난 변화였다.
우리가 집 다운 집에 살게 된걸 누구보다 기뻐했던 건 부모님과 가족들이었다.
물질적으로 도와주지 못함을 늘 미안하게 생각하셨던 양가 부모님들은 그런
우리를 기특하고 대견하게 바라보셨다.
결혼하고 처음 느꼈던 그때의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기뻤지만 죄송했고 이제라도 부모님을 웃게할 수 있음에 감사했으며 더 큰 기쁨을
드리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환경이 달라지니 마음가짐도, 생각과 계획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는 우리.
서프라이즈 한 선물 없이도 벅찬 마음으로 맞이한 그 날은 어느날 보다 특별했다.
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과 기분이 어떤지쯤은 눈치로 알아차릴 9년의 시간.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 왠지모를 확신이 들었다.
이제 갓 돌이 지났을까.
엄마 아빠 손을 꼭 잡고 야무지게 걸어가는 여자아이는 우리를 피식 웃게 만들었고
개구진 장난으로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아이를 보면 서로의 교육관을 내세우며
진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지금껏 딩크로 살아온 평범하지 않은 일상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고 싶은 작은
욕심에서 변화되기 시작했지만 분명 그 결정은 나를 꽤나 멋진 어른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에 맞서는 용기도 필요한 법.
엄마가 되고 싶은 소망은 결심과 욕심만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 엄마가 되고 싶은데 이 정도 쯤이야.
' 요즘 젊은 사람들도, 연예인들도 다 간다는데 나도 한번 가보자 '
간절함은 이런건가 보다 싶은 순간이었다.
내 발로 찾아 간 그곳은 입소문이 자자한 난임병원이었다.
내가 이 곳에 올줄이야,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그 곳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기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 다양했고 좁은 의자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다.
매 순간 인내로 견뎌내야하는 곳은 이런 분위기일까
그렇게 2시간 반을 기다려 만난 선생님.
내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줄 것 같았고 명쾌한 답을 말해 줄것만 같았다.
' 두분 다 나이가 너무 많으세요. 인공수정만으로는 어려울것 같으니 바로
시험관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 만약 시도 한다 해도 1차에 성공하시는 분은 극히 드물어요 '
' 남편 분과 상의 후 결정하세요 '
내 가슴을 쿵 내려앉게 했지만 선생님은 분명 하루에도 수십번은 더 하는 감정없는
팩트일 것이다.
이토록 차갑고 냉정할줄이야.
이런곳을 내 발로 찾아와 왜 상처받는 말을 듣고있는 걸까
순간 오만가지 생각과 후회가 앞섰다.
병원 문을 나서니 글썽거리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토록 현실적인 곳은 처음이었다.
단단히 각오없이는 올수 없는 곳이 맞다.
그래서 난 버텨보기로 했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던 내 마음에 마침 오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딩크족에서 난임부부가 된 우리는 그렇게 1차 시험관을 준비했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고 인내하기로 했다.
' 그래, 해보자 '
결혼 10주년을 앞둔 우리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