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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욱 Nov 21. 2017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와 사과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1편

르네 마그리트의 <Listening Room>


위의 그림은 흔히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가로 불리는 벨기에의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그림 <TheListening Room>이다. 이 그림은 1952년작품으로, 방안을 꽉 채운 거대한 사과를 그린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 Surrealism) 화가로 불리운다. 초현실주의는 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세께에 퍼진 문학 및 예술의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초현실주의는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1856-1939)의 무의식을 강조하는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정치경제학적으로는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등장하게 된다. 공식적인 초현실주의의 등장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앙드레 브르통(AndreBreton)이 1924년 <초현실주의의선언(Manifesto of Surrealism)>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본다.


앙드레 브르통


미술사적으로는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나 후안 미로(Joan Miro, 1893-1983), 만 레이(ManRay, 1890-1976)로부터 시작하여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55)나 르네 마그리트, 프리다 칼로(FridaKahlo, 1907-1954),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 아실고르키(Arshile Gorky, 1904-1948)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이 등장하여 미술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위의 르네 마그리트 사진의 배경이 된 그림은 아래의 1953년 그림 <Golconda>이다. 이 그림은 한국어로는 주로 <겨울비>라고 번역하고 있고,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준 바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휴고 위빙(Hugo Weaving)이 연기한 스미스 요원이 여러 명으로 복제되는 장면에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지고, "이츠 레이닝 멘 할렐루야~"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가수 게리 할리웰(Geri Halliwell)이 부른 잘 알려진 노래 <It's Raining Men>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신세계 백화점의 공사 가림막에 이 그림이 차용되었고, 최근에는 LG 유플러스 광고에서도 이를 차용한 바 있다.


마그리트의 <Golconda>
LG 유플러스 광고


이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부여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초현실적인 미(美)를 추구하였고, 그 영향력은 유럽을 넘어 미국, 남미, 아시아의 문학과 미술에도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소설 ‘날개’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작가 이상도 초현실주의의 세례를 받은 작가라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이성과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서구 문명에 반발하여 꿈, 무의식, 공상, 상상 등을 비현실적(초현실적)인 것을 통해 이성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의 극대화와 인간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째든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는 것이 문학이든, 예술이든 새로운 발전으로 나가는 것이겠다. 이는 경제학에서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이야기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와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기존의 것을 분해,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있으니까.


마그리트는1898년 벨기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강에서 자살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이후 브뤼셀의 미술아카데미(Academie des Beaux-Art)에서 2년 여간 공부를 하였으나, 제도권 미술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떠난다. 이후 마그리트는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로 대표되는 입체파(cubism)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게 되고, 몇가지직업을 가지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벽지회사의 벽지 무늬를 그리기도 한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1927년 최초의 개인 전시회를 브뤼셀에서 개최한다. 그러나 너무 독특한 스타일로 악평을 받게 되고,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파리에서는 초현실주의의 개척자 격인 안드레 브루통과 친구가 되고, 시각적 초현실주의 운동에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후 다시 브뤼셀로 돌아와 공중에 떠 있는 바위, 그림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구도, 인간 속에 무생물을 배치하는 등의 작업을 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른 어떤 것을 숨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라거나 “만일 꿈이 깨어있는 삶의 반영이라면, 깨어있는 삶 또한 꿈의 반영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마그리트는 물질적 세계에 대한 모든 도그마적 관점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이 대목에서 프로이트의 영향도 읽을 수 있겠다.


다시<The Listening Room>으로 돌아가 보자. 마그리트의 그림들 중에는 사과를 모티프(motif)로 한 것이 많다. 아래의 <인간의 아들(The Son of Man)>이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This is Not an Apple)>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들에서 떠오르는 것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애플사의 로고나 회사 명칭에 영향을 미쳤을까? 런던의 아트 딜러인 로버트 프레이저(Robert Fraser)에 의하면,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이 그림을 보고 자신들이 세운 애플 레코드의 회사 이름과 로고를 만든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면 비틀즈가 애플 레코드를 만들때 마그리트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려면, 비틀즈의 애플 레코드와 잡스의 애플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사과 이야기를 해 보자 


인류 역사상 중요한 사과 3가지를 꼽으라면,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사과)와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 그리고 아이폰을 만든 애플을 이야기 한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세잔의 사과를 끼워 넣기도 한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어 스스로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는것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로서 인간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게 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하나님이 벌을 주어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였다고 하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 하는 존재라면 얼마나 인류의 역사가 처참했을까?  


혹자는 선악과라는 한국어 번역이 잘 못 되어 있다고도 한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에츠 다아쓰 토브 워-라’라고되어 있고, 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은 ‘tree ofknowledge of God and Evil’이다.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라는 것이 아니고, ‘다아쓰’가 지식이라는 뜻이고, ‘토브 워-라’는 선과 악이라고 번역되지만 히브리어에서 관용적으로 상반된 두 개의 요소를 나열하여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전부, 모든 것’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여튼 이 선악과로 인하여 인간이 합리성,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인간의 역사는 이성과 합리의 역사로 재탄생하게 된 것을 우의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존 밀턴이 쓴 서사시 <실락원>은 이러한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 추방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존 스타인벡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으로부터 동쪽으로 쫓겨났다는 것을 모티프로 하여 <에덴의 동쪽>이라는 소설을 집필한 바 있다. 이는 창세기 4장 15절의 “And Cain went out from the presenceof the Lord,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on the east of Eden”에서 따 왔다고 한다.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영문 표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제임스 딘(James Dean)이 주연한 엘리아 카잔 감독의 1955년 영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이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른 바 있고, 아카데미상에서도 최우수 감독상 등 4개 부문후보에 올라 극 중 제임스 딘의 어머니 역을 한 배우 조 반플릿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역시 제임스 딘이다. 당시 미국 청년세대들이 겪고 있었던 젊음의 방황과 고뇌를 잘표현한 그는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운명을 달리하여 더욱 안타까웠다. 

영화 <에덴의 동쪽> 한국 개봉 포스터



이러한 선악과가 어떤 과일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일부는 무화과라고도 하고, 또 혹자는 바나나라는 의견도 있다) 많은 화가들이 아담과 이브의 이 사건을 그림으로 그린 바 있고, 선악과를 사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반 데르 후스(Van der Goes)의 ‘인간의 타락’(1470)에서도 이브는 사과로 보이는 열매를 따고 있는 장면이 있고,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아담과 이브(Adam and Eve, 1507년)’에서도 아담과 이브가 들고 있는 열매는 사과같이 보인다. 게다가 라틴어로 사과는 ‘말룸, malum’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와 같은 철자로 단모음으로 발음하면 ‘사악한, 나쁜’이라는 뜻이 되는 등, 선악과는 사과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반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인 미켈란젤로의 그림 <에덴동산>에서 보면 나무의 형태로 보았을 때 이것이 사과가 아닌 무화과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다만 무화과이든, 사과이든 그것은 후대의 해석에 대한 부분이고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두번째 인류 역사에 중요한 아이작 뉴턴(1642-1727)의 사과를 보자. 뉴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과학자 중 하나라는데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우연히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에서 중력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뉴턴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미친 인물 가운데 하나로 누구나 꼽고 있다. 그가 1687년 발간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는 고전역학과 만유인력의 원리를 제시하며 과학사 및 인류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로 꼽힌다.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애플 컴퓨터의 회사 로고는1976년 스티븐 잡스(Steve Jobs)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함께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로널드 웨인(Ronald Wayne)이 처음 만든 것이다. 로널드 웨인은 개인용 컴퓨터가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과 같이 혁명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회사의 로고를 펜으로 그렸는데. 이는 아이작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었다. 또한 이 로고의 주위에는 “뉴턴…생각이라는 이상한 바다에서 영원히 항해하는 지성(Newton… a mind forevervoyaging through strange seas of thought)”이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었다. 이 문구는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드워스(William Wordworth)의 시였다. 한편 로널드 웨인은 그 다음해에 2300 달러를 받고 자신의 지분을 잡스와 워즈니악에게 팔았는데, 한참 후에 그는 이를 얼마나 후회했을까? 자신의 지분인 10%를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2016년 현재 가치로 755억 달러(약 84조원)을 가진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Apple 사의 최초 로고

로버트 웨인의 드로잉은 “베어 문 사과(bitten apple)”로 불리는 현재의 애플 로고의 시작이었다. 웨인의 드로잉이 애플의 로고가 되었지만, 1년도 안 되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스티브 잡스는 그래픽디자이너인 롭 재노프(Rob Janoff)를 고용하여 새로운 로고를 만들게 된다. 이것이 무지개 색깔로 된 사과 로고이며, 컬러 디스플레이를 세계최초로 채택한 애플 2 컴퓨터부터 이 로고가 사용된다. 이후 전체가 검정색인 모노크롬 로고(1998) 등의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현재의 로고가 된 것이다.


Apple사의 로고 변천사

한편 스티브 잡스의 애플 컴퓨터 말고 또 애플이란 회사가 있는데, 전설의 밴드인 비틀즈(Beatles)가 세운 음반회사인 애플 레코드(AppleRecords)이다. 비틀즈는 자신들의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이 죽자 이 회사를 1968년에 설립했다. 이 음반사와 계약했던 음악가는 비틀즈 외에도 배드핑거스(Badfingers), 메리 홉킨(Mary Hopkin), 오노 요코(YokoOno,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부인이자 행위예술가이기도 하다), 트래쉬(Trash) 등이 있었다.


비틀즈의 애플사 로고



이제 문제가 발생한다. 애플 컴퓨터가 창업한 지 2년밖에 안된 1978년, 비틀즈의 애플사(애플레코드가 당시에는 Apple Corps였음)가 애플 컴퓨터(현재는 그냥 ‘애플’이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이 소송은 1981년 양 당사자간의 합의로 종료하는데, 애플컴퓨터는 애플사에 8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당시 5천만 달러 이상을 애플사가 받았을 것으로 세간에서는 추측했으나,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금액으로 합의한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또한 이 합의의 조건으로 애플 컴퓨터는 음악 산업에는진출하지 않기로 하고, 애플사는 컴퓨터 산업에는 진출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1986년 애플 컴퓨터가 자신의 컴퓨터 제품에 미디(MIDI)와 오디오 녹음 기능을 탑재하였고, 1989년 애플사가 1981년의 합의계약을 위반하였다는 취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이 소송으로 인하여 애플 컴퓨터는 더 이상의 멀티미디어를 탑재한 컴퓨터를 개발하지 못 하게 된 것이다. 이에 1991년 애플 컴퓨터와 애플사는 2,650만 달러 규모의 배상금에 합의하게 된다. 그 내용은, 각자 애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되, 애플사가 모든 “음악을 주요 컨텐츠로 하는 창의적인 작업”에 ‘애플’을 사용할 권리를 갖는 반면, 애플 컴퓨터는 애플사가 갖게 되는 음악과 관련한 컨텐츠의 “재제작, 실행, 배포 등에사용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애플 명칭을 사용하는 권리를 갖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결국 애플 컴퓨터는 물리적인 음반의 제작, 판매, 배포 등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이튠즈 로고

그런데, 다른 변수가 생긴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물리적인 음반이 아닌 형태의 서비스가 생긴 것이다. 2003년 애플사는 다시 애플 컴퓨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데, 이번에는 애플 로고를 애플 컴퓨터의 아이튠스 음악 스토어에서 사용하는 것이 1991년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소송은 2006년 영국에서 처음 공판이 열렸는데, 애플 컴퓨터는 2003년 온라인 음악 스토어를 시작하기 직전에 애플사에 애플 명칭을 아이튠스 스토어에 사용하는 대가로 100만 달러의 제안을 한 바 있었으나, 애플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소송에서 영국 법원은 애플 컴퓨터에 유리한 판결을 하게 된다. 즉, 애플 컴퓨터는 애플사의 상표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고, 계약상 가능한 범위인 재제작, 실행, 배포 등의 행위에 해당하여 계약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애플사는 애플 컴퓨터에게 소송비용으로 2백만 파운드를 지급하라고도 했다. 애플사는 이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게 된다.  


잡스의 Apple v. 비틀즈의 Apple 소송의 영국 법원 판결 표지


영국법원의 판결 후에 2007년 2월 잡스의 애플(Apple Inc.)과 비틀즈의 애플(Apple Corps)은 합의문을 발표한다. 잡스의 애플은 애플 상표를 모두 갖고, 비틀즈의 애플에 라이선스(license)를 주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로 모든 진행중인 소송을 종결하고,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기로 하였다. 이로서 잡스의 애플은 아이튠스 서비스에 애플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잡스의 애플은 애플이란 상표를 비틀즈의 애플로부터 5억 달러(약 5,560억원)에 매입한 것으로 비틀즈와 잡스는 같은 애플(Apple)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잡스의 애플과 비틀즈의 애플 간 상표권 분쟁은 끝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비틀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는데, 비틀즈의 상표권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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