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했던 우울감은 이랬다. 극단적인 행동조차 하기 귀찮은, 정확히는 그럴 의욕조차 없는 상태였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침몰하는 커다란 배처럼 서서히 그러나 멈춤 없이 또박또박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부력이 중력을 당해낼 수는 없는 듯했다.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구조대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구조원이었다. 갈색 피부의 여성이었다.
그날도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동생이 키고 간 건지 내가 얼떨결에 틀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이따금씩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냥 누워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서. 그럴 의욕이 없어서. 그러다 문득 일어나 컴퓨터 화면을 보았는데 그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가 떠있었다. 하릴없이 파도타기를 눌렀다. 그때 누군가의 홈피에서 '빰빰빰'하는 멜로디가 나의 귀를 때렸다. 중력보다 큰 부력이 발생했다. 가라앉는 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미 음악의 멜로디 같은데 랩이 얹어진 그리고 사운드가 살짝 뭉개진 처음 들어보는 장르였다. 순간 혼미했다.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는데 모든 게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르몬이 변화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그때부터 한동안 이 음악만을 들었다. 누자베스의 <Lady Brown>이었다.
처음엔 가사를 신경 쓰지 않고 멜로디만으로 힐링이 되었는데, 가사또한 곱씹을수록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특히나 "그녀는 교회에 있어야 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가 물고기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닌 신의 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She needs to be in a church to prove that we didn't spawn from fish but God's work.)"는 내가 여태껏 들어본 어떠한 사랑노래 가사보다 참신하고 울림이 있었다.
누자베스가 창조한 갈색피부의 여성이 나를 구원한 것이다. 이때부터 매년 가장 많이 들은 음악에 <Lady Brown>이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나를 구원한 창조자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검색을 해보았다.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검색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었다. 내게 남겨진 그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루트는 음악뿐이었다. 이때부터 매년 나만의 방법으로 그의 기일을 기리고 있다. 그의 LP를 들고 힙합 음악을 전문으로 트는 카페에 가서 기념하기도 하고, 그에게 보내는 노래를 서툴지만 만들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곧 다가올 그의 기일을 기리며 누자베스에게 한 마디를 하고 싶다.
You need to be in a church to prove that we didn't spawn from fish but God's work. Rest in beat, Nujab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