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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Dec 12. 2022

글의 시대는 다시 온다!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은 멸종 위기에 놓인 희귀종이다. 아니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세대라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는 풍경이 기억 속에 선명할 것이다. 한때는 <메트로>, <포커스>, <AM7> 등의 지하철 무가지(무료로 나누어주는 신문)가 출구 쪽에 배치되어 거의 모든 사람이 신문을 읽기도 했다.


지하철 무가지 AM7. 사진 출처: 미디어 오늘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풍경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출퇴근길에 종이신문을 읽지 않게 되었다. 다만 종이신문에서 스마트폰으로 매체가 바뀌었을 뿐이지 사람들이 읽는 것은 여전히 글로 된 뉴스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출퇴근길의 풍경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지만 '글'은 여전히 출퇴근 길의 벗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통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동영상'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글'에서 '영상'으로 이주했다. 그것도 5G와 같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이는 비단 출퇴근길만의 변화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글'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현상은 우리 삶 곳곳에 침투했다. 독서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국내에서 책을 읽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텍스트 대신 영상 시청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더 심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서점 이용과 책 모임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독서 문화 전반의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기준 독서 경험만 살펴보면 전체 88.2%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실은 빈약한 수준이다. 최근 1년 기준 독서량이 평균 2~3권(27.1%)이나 4~5권(17%) 정도에 그쳤다. 전자책의 확산도 독서 인구 증가에는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년 동안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 읽어봤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4명(40.4%) 정도에 불과했다.

- 변진욱, "갈수록 줄어드는 ‘독서 인구’…영상만 보는 대한민국", 매일경제, 20221107 중 -



'글'에서 '영상'으로의 이동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에어컨에 익숙해진 사람이 다시 선풍기로 돌아가기 힘들듯이 말이다. 더군다나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따르면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는 인류의 역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다시 '글'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상'매체인 유튜브에서 말이다.



https://youtu.be/LSMcSv043LI


네이버 파워블로거인 쭌이덕은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블로그로 트래픽이 생각보다 지금 엄청나게 많이 몰리고 있어요. 그 소위 말하는 억대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새로 진입하는 Z세대들은 이 블로그에 적응을 잘 못해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타자를 못 쳐요. 이거(스마트폰)밖에 안 했거든요.

그런데 '블로그'라는 플랫폼은 PC에 최적화돼 있어요. 타자를 쓰고 글을 쓰고. MZ세대들 그래서 '영상의 시대', 영상에서 '숏폼의 시대'로 가면서 글에 너무 약해졌어요.  

- 쭌이덕 -



그가 말 바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네이버 블로그 트래픽이 늘면서 블로그에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신규로 진입해야 할 MZ세대는 글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파워블로거가 되기 어렵다.
시장은 커지는데 생산자는 늘지 않기에, '글'의 플랫폼 네이버 블로그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글을 읽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글을 생산할 수 있는 인구 또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글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 또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에 대한 수요는 크게 줄지 않는 상태에서 공급이 가파르게 줄어들면 글의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나는 쭌이덕이 말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글의 시대(협소하게는 네이버 블로그에 기회)가 올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나만의 이유 세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바로 '검색', '창작', '협업'의 측면에서 '글'의 시대가 올 것임을.



1. 검색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는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클릭 한 번이면 수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도 양질의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이처럼 양질의 질문, 즉 양질의 검색어를 입력해야 한다. 다른 말로 적절한 '글(텍스트)'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미완성의 어설픈 검색어를 입력해도 알고리즘이 최대한 사람의 의도를 헤아려서 답을 내놓고는 있지만, 심도 깊은 내용 혹은 독창적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여전히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검색어를 생각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권력의 역사는 '정보접근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누가 더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권력의 주체를 결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상의 금융 정보망은 유대인이, 최상의 군사 정보망은 미국이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소수가 정보를 독점했던 과거와 달리 검색 한 번이면 수많은 정보에 접근 가능한 요즘에는 누가 더 양질의 열쇠, 즉 '검색어'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느냐가 정보접근의 질을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주체까지. 


2. 창작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것만 같다. 독창적인 생각과 그것을 표현해 내는 기술을 모두 갖추어야만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또한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과 함께 말이다.


이제는 적절한 텍스트만 입력해도 미술과 음악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세히 말하면 '적절한 생각'과 이를 '적절한 텍스트'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말이다.  


글로 노래를 만드는 Melobytes. 사진 출처: 구글
글로 이미지를 만드는 Deepai. 사진 출처: 구글
Sublime Sunset이라는 키워드로 만든 그림. 사진 출처: deepai


그래서 앞으로의 예술과 창작은 누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더 명료하고 독창적인 '글'로 만드냐의 싸움일 수도 있다.



3. 협업


사회초년생이 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통적으로 깨닫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때는 무조건 '글'로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유관부서 혹은 대행사와 일할 때 대면미팅 혹은 전화와 같이 구두로만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가 꼭 실수를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실수에 대해 뒤늦게 이야기하면 "전 들은 적이 없는데요" 혹은 "전 다르게 들었는데요"와 같이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오가곤 한다. 이런 일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메일이나 문자 등과 같은 수단을 통해 '글'로 업무내용을 남기는 습관을 갖게 된다. 즉 기술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타인과 협력할 때 '글'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협력 대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글'로 소통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데, 이때 중요한 것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오해 없이 명쾌하게 '글'로 전달할 수 있느냐이다. 지식과 업무가 세분화됨에 따라 협력해야 할 대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고 그럴 때일수록 '글'로 소통하는 능력의 중요성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대화 내용을 바로 텍스트로 변환해서 저장해 주는 기술이 있긴 하지만, 말로 전하는 내용의 비논리성은 텍스트로 변환했을 때 더더욱 두드러진다)



누구라도 내년 겨울도 추울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날씨는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후자는 태풍도 일으킬 수 있는 나비의 날갯짓까지 고려해야 하는 '카오스 이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예측한 바도 이러한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쉽게 말해 비 오는 날 운동회를 개최하는 기상청과 같이 망신당하기 쉬운 예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글의 시대가 온다는 나의 예측은 어쩌면 나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독서를 즐겨하고 매일 브런치를 활용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의 바람말이다. 내가 예측한 글의 시대가 올지 안 올진 모르겠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이라면 아마도 나와 같이 글의 시대가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글의 시대가 다시 올 때까지 글을 사랑하는 모든 희귀종들의 건투를 빈다.


Photo by Micah Boswel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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