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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Dec 21. 2022

300일 동안 매일 썼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처음으로 숙제를 하지 않고 등교하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고역이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온 날은 날씨라는 화두로, 친구의 생일이 있던 날은 그것을 주제로 어찌어찌 썼지만 그 외의 날은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친구들과 놀았다" "오늘도 재밌는 TV를 보았다"와 같은 내용밖에 쓸게 없었다. 매일이 나에게는 반복되는 동일한 하루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하지 않으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꾸역꾸역 일기를 썼다.


그러다 어느 날 등교를 하던 중에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늘 그렇듯 아슬아슬하게 등교를 했기에 숙제 검사 전에 일기를 쓸 시간도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이 이처럼 무거울까 싶었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달리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은 그렇게 엄청난 일이 아니었다. 일기를 꾸역꾸역 쓰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오히려 견딜만했다. 나의 스트레스를 지불하고 일기를 쓸 바에, 선생님에게 혼나고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 낫게 느껴졌다. 이 사건 후부터 일기를 쓰지 않는 일은 '예외적인 일'에서 '흔한 일'로 바뀌었다.


글 쓰는 것을 이처럼 싫어했기에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글을 피하는 쪽을 택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그림을 그리고, 꼭 글을 써야 한다면 짧게 써도 되는 시를 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는 크게 변함이 없었다.


스스로를 '글 쓰는 인간'이 아닌 '말하는 인간'으로 생각해왔기에,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즐기기도 했지만 글을 쓰는 것은 늘 고역이었다. 그러던 내가 300일 동안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10년 전의 나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면 내가 1조 원을 벌었다는 소식을 더 신빙성 있게 느낄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카카오 먹통 사태로 2일은 어쩔 수 없이 쓰지 못했으니 302일 동안 300일을 매일 글을 썼다. 원동력은 딱 한 가지였다. 글을 잘 쓰는 것도, 구독자를 늘리는 것도 아닌 그냥 매일 쓰는 것 그 자체가 목표였다는 사실이다.


매일매일 떠오르는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썼기에, 어떤 글은 논리적이지 않고 또 어떤 글은 나만의 세계에 빠져 타인과의 소통은 배제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글이 '퇴고'를 거치지 않은 날 것이기에 지금 와서 보면 아쉬운 부분 투성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표를 세운 이유는 단 하나다. 글 쓰는 것이 관성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글 쓰는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글 '잘'쓰는 인간은 추후의 문제고 일단 글 쓰는 인간이 되는 것이 나에게는 급선무였다.


300일 동안 매일 써 내려간 글을 통해 '글쓰기의 관성'이 생겼고 이젠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글 쓰는 인간이 된 것 같다. 이제 300일의 여정을 끝내고 매일 쓰는 것은 멈추려고 한다.


이제 나의 목표는 글 쓰는 인간이 아닌 ''쓰는 인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P.S. 원동력이 단 한 가지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또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당신의 '좋아요'와 관심 어린 '댓글'이었다. 부족한 글을 따뜻한 시선으로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는 연휴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 4회 글쓰기를 목표로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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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Movie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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