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ㅣ피아노 리사이틀 in 부산 (10.6)

by Karajan

#공연리뷰


선우예권ㅣ피아노 리사이틀


10.6(금) / 19:30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Piano/ 선우예권 (Yekwon Sunwoo)


[프로그램]


J. S. Bach / J. Brahms

Chaconne for the left hand BWV.1004


J. S. Bach

Partita for Keyboard No.2 BWV.826


S. Rachmaninov

Variations on a Theme of Corelli Op.42


S. Rachmaninov

Variations on a Theme of Chopin Op.22


<Encore>


S. Rachmaninov / A. Volodos

Cello Sonata Op.19 '3rd mov.'


S. Rachmaninov

Prelude Op.3-2

Prelude Op.24-5


#선우예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의 영광은 임윤찬 이전에 선우예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수많은 애호가들이 그의 진가를 인정하기에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임윤찬, 조성진과 완벽하게 다른 방향과 색채를 지닌 선우예권의 피아니즘은 유독 그만을 사랑하는 덕후들로 거대한 팬덤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 부산 공연은 서울에서 원정 온 열혈 팬들의 열기가 더해져 이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연주는 윤기가 흐르는 고급스러운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마치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먼 길을 떠나는 선비처럼 그의 동작이나 해석은 단아하고 깊은 정갈함이 있다. 정교하고 낭만적이며 따스한 온기를 지닌 타건은 때론 폭발적인 스피드와 화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오늘 그가 무대에 들고 나온 작품들 모두 반전과 단계적 변화, 그리고 격정적인 흐름을 지닌 곡들이었고 객석은 그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깔끔하고 이성적인 흐름은 내심 충격과 쾌감을 기대했던 청중들에게는 다소 흥미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음악이다. 그의 연주는 무사처럼 저돌적으로 솟구치는 카타르시스가 아닌, 이성적이면서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첫 곡 <J. S. 바흐-브람스 '왼손을 위한 샤콘느' d단조>는 잔인했다. <J. S.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를 브람스가 왼손을 위해 편곡한 곡으로 도대체 왜 이런 편곡을 시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작품 자체의 난해한 잔인함은 연주를 감상하는 순간순간들을 힘겹게 만들었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의 어쿠스틱마저 왼손만으로 타건 해야 하는 이 곡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 했다. 첫 음이 들리자마자 당황스러웠던 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군분투 속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선우예권의 연주는 잔인함이 예술로서 승화되는 환희를 경험케 했다.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과 달리 단지 '왼손만을 위한 작품이 지닌 가치'를 오롯이 증명한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2부는 앙코르 세 곡을 포함해 라흐마니노프의 향연으로 꾸며졌다.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연주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정도만 알고 있었던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작품들 모두가 낯설었던 만큼, 오늘 선우예권의 연주 스타일도 긴 시간 적응이 필요했다. 평소 느껴왔던 그의 소릿결도, 스케일도 오늘은 왠지 다르게 다가온 탓이다. 자신의 새 앨범 수록곡으로 이번 연주회가 꾸며진 것도, 전반부의 바흐도, 그리고 이곳 부산에서 만나게 된 그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연주의 호불호나 취향을 떠나 작품을 고르는 관점이나 바라보는 시각, 핵심 주제를 꿰뚫는 근본적인 안목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전의 명징한 프레이징은 다소 부드러운 변화가 느껴졌지만 해석의 깊이와 소릿결의 조탁은 보다 완숙해졌다. 삶과 음악을 바라보는 혜안이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 확고히 자리 잡은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앙코르 역시 신보에 수록된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을 세 곡 연주했다. 여유로움 속에 농밀한 섬세함을 지닌 그의 연주는 긴장과 반전의 텐션으로 관객을 농락했다. 아직 젊은 그는 얼마든지 더 연주할 수 있다는 듯 객석을 향해 의도성 짙은 앨범 비지니스를 했고, 농담을 했으며 다시 피아노를 향해 앉기를 반복하며 객석의 폭발적인 갈채를 이끌어냈다.


공연이 종료된 후 공연장 문 밖까지 길게 늘어선 사인회 대기자들의 모습에서 선우예권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옛날 선비 같은 순수한 음악가이지만 내면에서 뿜어지는 그의 강인한 음악성은 누구 못지않은 팬덤으로 확고히 위치를 차지하는 음악인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동안 협연 무대로 그를 주로 만나왔고 가수 권진아와 듀오 무대를 통해서도 그의 편견 없는 음악적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오늘처럼 오롯하게 그만의 리사이틀로 만나는 선우예권은 그만큼 강인한 인상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을 선사해 주었다. 가을밤의 부산에서 조우한 그의 음악이 선물처럼 다가왔던 오늘을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련다. 선우예권의 음악은 비록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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