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폴 루이스가 연주한 'D.840'과 'D.845'는 개인적으로 처음 듣게 된 곡이다. 낯설었던 만큼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기도 해서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혼란스러움도 대단히 컸다. 특히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5번 "유품" D.840>은 음악적인 전개 방식이나 선율 구조가 생소해 좀처럼 몰입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폴 루이스는 그가 여러 음원으로도 보여줬던 대범한 인토네이션과 유려한 음색, 여유롭고 강인한 타건으로 곡 분위기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공연의 시작점이 무언가 불확실성을 암시하는 느낌이었고 내가 알고 있던 '폴 루이스 음악 세계'에 대한 현실적인 관점이 그만의 과감한 호흡을 통해 불완전성과 모호함에 대한 경계를 차츰 허물어 나가는 듯했다.
F. SchubertㅣPiano Sonata No.13 D.664
사실 나는 폴 루이스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소나타 13번 D.664>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 과연 그는 음반을 통해 듣던 그 느낌 그대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化'하는 모습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고귀하고 성스러운 음향의 파도 속에서 솟아나는 음악의 향연은 반짝이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황홀했다. 심연의 슬픔과 고통이 극한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이 순간은 천상에 이르는 참 평화의 시간이 되리라. 불행과 고난의 바다 위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가련한 인간의 삶이 그의 깊은 손길로 위로 받는 은혜로운 경험은 비단 나만의 감상은 아니었으리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 그와 함께 함이 이토록 가슴 한 켠 뭉클하게 하는 것인지 진정 감사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F. SchubertㅣPiano Sonata No.16 D.845
오늘 연주의 핵심적인 작품은 당연히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D.845>였다. 이 곡은 마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를 연상케 하는 거장적인 대곡으로 폴 루이스만의 슈베르트에 대한 접근 방식들이 다채롭게 전개되는 또 다른 단면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고 드라마틱한 대비감과 탄력적인 리듬 감각을 통해 음악적 쾌감을 오롯이 체감할 수 있는 해석 구조를 선보였다. 앞선 두 곡 피아노 소나타에서 보여준 것처럼 서사적인 전개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구조적 공간감으로 형상화하는 그의 탁월한 음악성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때론 너무나 진중하게, 때론 마치 세상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킬 것처럼 몰아치는 그의 강력 타건은 마음을 거세게 두드리며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폴 루이스, 그가 바라보는 슈베르트에 대한 '관조와 집중의 시선'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대비감을 효과적인 응집력과 따스한 서사 구조로 사로잡는 마법적인 매력을 지녔다. 그래서 그의 연주가 끝나면 잔잔하고 진한 여운으로 몽롱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폭발적 타건으로 코다가 마무리 되자 관객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은 깨어나고싶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시그널은 다시 불행과 고통의 현실 세계로 우리를 되돌려 놓고야 말았다. 원치 않았지만 나는 결국 받아들여야만 했다.
F. SchubertㅣMoments Musicaux No.6 D.780
J. SibeliusㅣBagatelles Op.97 No.2
오늘 그가 앙코르로 들려준 두 작품은 여리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D.664' 2악장에서 들려줬던 그 때의 느낌처럼 심연의 슬픔에 대한 순수하고 깨끗한 위로였다. 코다의 순간과 숨막히는 침묵의 시간들이 안겨준 카타르시스는 연주가 주는 감동, 그 이상의 쾌감이었으니 폴 루이스는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아는 연주자였다. 그의 가슴에서 울려오는 슈베르트의 음악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전달되는 유기적이고 정서적인 파급력으로 가득했다. 객석을 벗어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충격이었다. 그의 연주를 온몸으로 흡수했던 그 시간은 아마도 내 삶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