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의 9곡의 베토벤 교향곡은 3번 이후부터 본격적인 진가가 드러난다. 물론 초기 1, 2번 교향곡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프란스 브뤼헨, 존 엘리엇 가디너와 같은 고음악 연주나 리카르도 샤이 등 걸출한 연주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토벤 교향곡 3번> 이후는 카라얀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특히 "영웅 교향곡"은 이보다 더 완벽하게 연주된 음원은 찾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게다가 1962년 연주는 카라얀의 70, 80년대 음원과도 완벽히 구별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연주를 들으며 분명하게 각인된 확신은, 세상 모든 교향곡 중 단 하나만 남겨져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에로이카> 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내게 카라얀의 "영웅 교향곡"에 대한 강력한 믿음은 '종교적'이라 말할 수 있다.
1악장 도입부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후부터 감상자는 음악이 선사하는 엑스터시에 빠진다.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해석과 연주를 펼치면 그때부터 음악은 결코 비평의 대상이 아닌, 천상의 길로 향한다. 이것이 우리가 음악을 향유하는 원초적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완벽한 앙상블을 만났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이 불가하다. 단지 추상적인 흥분의 나열만 가능한 것이다. 아니면 완벽히 침묵하거나. 이미 나는 정신을 잃고 흥분했으니 서술은 여기서 끝났다. 그저 기쁨과 황홀함을 가득 안고 영광된 성령강림을 온몸으로 맞이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