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소피 무터, 램버트 오르키스 콤비의 1995년 베를린 리사이틀 실황은 그녀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거대한 그늘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의 고유한 음악을 찾아가던 시기에 연주된 중요한 기록이다. 그녀만의 독보적 음색, 본능적인 강렬한 보잉, 그리고 깊고 중후한 독일 감성을 온전히 녹여낸 '무터 사운드'는 숨겨온 발톱을 드러내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열어가는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이 음원이 지닌 가장 중요한 의미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8번>이다. 그녀의 슬픔을 머금은 묵직한 보잉과 참을 수 없는 눈물을 가슴속에 꾹 눌러 담는 쓰린 고통의 폭발적 발현은 그 어느 연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한 감성이자 유일한 표현력이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브람스 스케르초>에서도 무터의 깊은 감정선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드뷔시 바이올린 소나타>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저 매끈하고 곧은 음색이 아니라 거친 목소리로 격하지만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하는 한 중년의 뒷모습을 연상하게 만드는 무터의 음악은 현재의 나에게 더 많은 의미와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는 가슴의 반응이 다르다. 음악, 그 자체보다 그녀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바이올린의 여제' 안네 소피 무터, 그 시작의 순간이 바로 이 음원에 담겨있다. 그녀는 벅찬 기쁨에 겨워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짙은 슬픔이 가득하지만 그래서 그녀의 진정한 가치가 빛나는 기록이다. <드뷔시 "아름다운 저녁">으로 아련하게 종결되는 베를린 리사이틀은 얼룩진 슬픔으로 절실히 위로받는 역설적 환희와 조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