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길렐스ㅣ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外

by Karajan

#오늘의선곡


L. v. Beethoven

Piano Sonata No.19 Op.49 No.1

Piano Sonata No.20 Op.49 No.2

Piano Sonata No.21 Op.53 "Waldstein"

Piano Sonata No.23 Op.57 "Appassionata"

Piano Sonata No.25 Op.79


Piano/ Emil Gilels


#EmilGilels #Beethoven


어린 시절, 동네 어느 골목길 피아노 학원에서 들려오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록 서툰 연주이지만 정겨웠던 순간의 기억이다. <피아노 소나타 19, 20, 25번>은 그때 그 시절의 아련했던 추억의 편린이다. 바로 그 곡이 과거 소비에트 최고의 거장, 에밀 길렐스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단아하고 서정적인, 그러나 품격이 느껴지는 강력한 타건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아우라를 머금고 있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은 고금의 여러 다른 연주들과 궤를 달리하는 완벽히 독보적인 길렐스 스타일 연주이다. 1악장의 과감하고 저돌적인 흐름과 강철 타건, 그리고 러시아 피아니즘을 집약시킨 강렬한 해석은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충격을 선사한다. 아득하게 침잠하는 2악장의 서정을 지나 엑스터시에 이르게 하는 3악장의 아름답고 짙은 선율이 귓가에 강렬하게 박힌다. 길렐스는 한음 한음을 심장에 깊숙이 꽂는 듯하다. 마치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을 잃으면 다시 확인사살을 가한다. 그는 그야말로 잔인한 피아니스트이다. "발트슈타인"을 연주함에 있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고막 위에 오롯이 쏟아내는 그는 잔혹한 저격수의 표본이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에서도 그의 악마적 공격이 계속된다. 묵직한 템포를 유지하면서 어느 순간 맹폭을 가하는 그만의 공격전술은 투박함 속의 섬세함이 얼마나 효과적인 패턴인지 고스란히 증명한다. 코다의 경이로운 폭발력은 비록 예상했어도 결국 당하게 되는 마법이다. "발트슈타인"처럼 "열정"은 완벽하게 독자적이다. 이것은 길렐스 이후 수많은 거장들이 그를 동경하고 존경했지만 결국 그의 큰 궤적을 따르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에밀 길렐스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 작품 녹음을 남기지 못했지만 존재하는 음원들의 가치는 결코 형언할 수 없는 절대적 유산이다.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마지막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32번>이 없다는 점이지만 그의 영혼은 모든 소나타를 들려주고 있음이 느껴진다. 러시아 불곰 타건의 웅장한 힘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은 여운으로, 지워지지 않을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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