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은 1967년 녹음으로 EMI의 1980년 음원에 비해서 두텁고 강렬한 질감을 담고있어 북구의 기운으로 가득 찬 본연의 음색을 만끽할 수 있다. 카라얀 1960년대 연주는 그야말로 최전성기 시절의 패기와 힘으로 가득해 개인적으로는 가장 선호하는 시기이다. 말년의 노련함은 1980년대 음원에서 두드러지지만 보다 극단적인 해석과 뚜렷한 윤곽은 1960-70년대 연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 연주는 대단히 낭만적인 성향의 해석을 지향하지만 이 음원은 근육질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어 공격 성향이 지배적이다. 13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이토록 큼직한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은 이전의 교향곡들과 일관된 흐름을 이어가면서 한층 세련되고 장중하며 깊은 선율이 전개된다. 진정한 핀란드의 대자연을 묘사하는 교향곡은 그의 '마지막 7번'이 아닌가 싶다. 그가 이후에 심포니를 더 작곡했다면 분명 성악이나 합창이 더해졌을 것 같다. 도중에 창작을 중단했던 작곡가들은 슈베르트나 푸치니, 브루크너가 미완성 작품을 남겨놓은 것처럼 그것 자체로 운명적, 숙명적 의미를 지닌다. "교향곡 7번"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벨리우스는 아마도 마지막 교향곡에 집약된 메시지를 담아 조용하게 작별을 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이어가는 것은 스스로의 과업이 아니라고 여겼으리라. 대단히 장엄하고 서사적인 피날레는 극적인 환희로 종결된다.
"그 나무들은 널찍하게 서 있었네, 북쪽 땅의 어스름한 숲이여, 고대의, 신비로운, 어둡고 야만스러운 꿈이여.
그 꿈속에는 숲의 전지전능한 신이 살고 있네.
어둠 속의 숲의 정령들은 마법의 비밀을 짜고 있네."
- J. 시벨리우스, <타피올라> 서문
<시벨리우스 교향시 "타피올라">는 리스트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처럼 규모가 큰 작품은 아니지만 그가 출판 업자에게 보낸 <타피올라> 서문처럼 고대 핀란드 종교의 등장인물을 묘사한 음악이다. 신비롭고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하며 카라얀은 야성미 넘치는 음색으로 베를린필의 탁월한 기능성과 시원스러운 음색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극단으로 치닫는 고음 현의 날카로운 칼날은 어느 순간 가슴 한 켠을 스치며 깊은 상처를 남긴다. 현악의 차갑고 정제된 보잉은 서서히 사그러지며 몽롱한 여운을 남기고 환상적으로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