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명훈-KBS교향악단ㅣ말러 교향곡 2번 "부활"

by Karajan

#실황중계리뷰


정명훈-KBS교향악단ㅣ말러 교향곡 2번 "부활"


2.21(금) / 20: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이단비


고양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G. Mahler Symphony No.2 "Resurrection"


첫 악장 도입부는 주저함 없는 단호한 템포와 강도로 시작된다. 지휘자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특히 "부활 교향곡"은 국내에서 오랜만의 실연이 아닐까 싶다. 그의 말러해석은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저돌적 스타일이다. 오래전 서울시향과 연주했을 당시, 아직 이 작품에 익숙하지 않아 다소 무모한 도전이었던 상황을 상기해 본다면 지금의 여건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웬만한 국내 악단들도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곡이 됐고 연주력 수준도 많이 보편화됐기에 관객들의 귀도 비약적 고급화가 이뤄졌다. 그래서 연주자들도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치밀하고 프로페셔널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오늘 K향의 앙상블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이유 있는 강력함'은 많은 리허설을 거쳐 준비된 상태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전의 여러 악단에서 야심 차게 들려준 연주들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구분되는 점이다. 다소 현이 흔들리는 모습도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안정감 있고 적당한 무게감과 유려한 사운드를 동시에 펼쳐내는 수준 높은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다.


1악장은 순식간에 끝난 듯하다. 거침없이 달려온 굵은 흐름에 잠시 홀린 느낌이다. 2악장은 말러 특유의 낭만적인 평화로움 위에 아름다운 현악군의 선율이 얹어지며 '정명훈 말러감성'이 오랜만에 귓가를 달콤하게 달군다. 앙상블의 섬세함의 정도는 보통 2악장에서 낱낱이 드러나게 되는데 보잉 템포나 디테일, 목관의 음향적 조합이 완벽히 조율된 모습은 아니어서 분명히 아쉬움도 있다. 3악장이 바로 이어지지 않고 텀을 두니 관객의 잡음이 흐름을 끊는다. 경쾌한 빠르기로 돌아오자 오히려 K향 앙상블이 안정을 찾는 듯하다. 실연으로 <말러 교향곡 2번>을 만나면 피할 수 없는 불안요소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거대하고 다양한 악기군이 수시로 적대적인 대결과 화합 구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 수많은 과정 속에서 불가항력의 거슬림과 단절, 어긋남이 발생하면서 심리적으로 불편해지는 것이다. 90%의 유연함 속에 일부의 거슬림이 흐름을 거칠게 만들지만 전체의 숲이 풍성하고 장엄한 울림을 준다면 성공적인 연주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4악장 "Urlicht"는 앞선 불협화음과 불안감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영혼의 깊은 충만을 안긴다. 메조소프라노 이단비의 밀도 높은 목소리 위에 융화되는 현악 솔로의 보잉이 대단히 유려하고 고급스러운 소릿결을 만든다. 매우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마지막 5악장 피날레가 강력하게 총주를 내뿜으며 시작된다. 오프스테이지에서 연주된 아득한 '광야의 팡파르'는 중계방송으로 듣기에 너무 가깝게 들린다. 사실 예술의전당은 말러 교향곡의 무대 밖 금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는 홀이다. 보통 무대 출입구를 열거나 반쯤 닫은 상태에서 연주하는데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어서 기대를 내려놓게 된다. 어찌 됐든 오늘도 그렇게 좋은 시도는 아닌 듯하다. 예상대로 후반부에 온 힘을 쏟아붓는 그들만의 역투가 느껴진다. 스네어 드럼의 폭발적 타격과 울부짖는 금관군의 투쟁이 굵은 보잉의 현악군과 만나 피날레를 향해 전진한다. 정명훈의 지휘는 예전 스피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늘어지는 템포를 지양하고 탄력을 잃지 않는 템포 루바토를 구사하면서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그의 해석은 말러에 대단히 적합한 보편적인 해석을 지향한다. 어느 오케스트라냐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수준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는 참으로 일관된 면이 있다. 합창단의 등장 직전 오프스테이지 음향도 아쉬움이 느껴진다. 금관이 사라지기 전 고요히 아카펠라로 합창이 시작된다. 이는 처음 들어본 시도이다. 나름 괜찮은 발상이라 생각된다. 곧이어 소프라노 황수미의 목소리가 고요를 뚫고 나온다. 드라마틱한 뉘앙스는 아니지만 무척 독특하다. 연합 합창단의 울림은 역시 깊은 감동의 이끌림을 안긴다. 이제 성령이 강림할 순간이다!! 객석의 모든 이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두 독창자는 각자의 기량이 부드러움 속에서 강력함을 발한다. 합창단의 중후한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는 그녀들의 이중창은 적당한 윤곽을 이루어 모나지 않은 균형감을 이루는 느낌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폭발적인 총주가 코다를 향해 달리며 장렬하게 끝맺는다. 매번 들을 때마다 라디오 중계방송의 질적 수준이 대단히 안타깝지만 비록 그렇더라도 그들이 부르짖은 뜨거운 화력은 확실히 느껴볼 수 있었다.


객석의 환호를 걷어내고 독창차의 이중창 부분부터 앙코르로 피날레 파트를 다시 연주한다. 어쩌면 참 좋은 시도라 보는데 다소 아쉬웠던 종결부를 다시 연주하면서 더욱 좋은 마무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오판이었다. 여전히 종은 타이밍이 살짝 안 맞았고 피날레에서 전체 앙상블이 대거 꼬여 초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오늘 가장 불안했던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다. (만약 이것이 의도했던 것이라면 말러리안들에게 엄청난 공격거리가 됐을 것이다) 마지막에 불안함과 안타까움을 남기긴 했음에도 오늘 그들의 말러는 오랜만의 '정명훈 말러감성'을 되새김질할 수 있었던 기회였기에 많은 청중들에게 오래전 추억을 안겨준 흥미로운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2.21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르마의 법칙 = 일체유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