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원-부산시향ㅣ쇼스타코비치 "DSCH" (6.19)

by Karajan

#공연리뷰


홍석원-부산시향ㅣ쇼스타코비치 "DSCH"


6.19(목) / 19:30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첼로/ 최하영


지휘/ 홍석원

연주/ 부산시립교향악단


D. ShostakovichㅣCello Concerto No.1 Op.107


<Encore>

D. GabrielliㅣRicercar No.5


D. ShostakovichㅣSymphony No.10 Op.93


<Encore: 정년퇴임 단원을 위한>

William ShieldㅣAuld Lang Syne


#최하영 #홍석원 #부산시립교향악단

#Shostakovich


쇼스타코비치ㅣ첼로 협주곡 1번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첼로 콩쿠르' 1위에 빛나는 최하영의 협연이라는 점은 비록 부산 공연임에도 오늘 연주회를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당위성으로서 충분한 요소였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은 2018년 12월 4일, 최희준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첼리스트 에드가 모로의 연주로 만난 이후 오랜만의 실연이었다.


강렬한 빨강 드레스를 입은 최하영의 등장은 그 자체로 환호가 터져 나올 만큼 객석 반응은 뜨거웠다. 조금은 새침한 표정의 최하영은 본능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사실 시작부터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이루는 조합에 강한 의문이 들었는데, 최하영의 연주는 작고 여리며 선이 가는 스타일인데 반해 오케스트라의 중량감과 강한 대조를 이뤄 연주 내내 비대칭 사운드를 경험케 했다. 좌석이 상당히 앞줄(3열)이었음을 감안해도 두 개체의 부조화는 아쉬움이 컸다. 첼로 자체의 연주는 매우 섬세하고 깔끔했지만 최하영의 작은 음량은 대곡을 협연하기엔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다만 '카덴차'로 이뤄진 3악장은 최하영 본연의 소리와 예술적 기교의 진면목을 눈앞에서 직관할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가녀린 음악적 감정에서도 뜨거운 보잉과 명징한 테크닉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 4악장은 섬세하고 기교적인 강점이 그녀만의 감성과 절묘하게 조합을 이뤄 깊고 인상적인 피날레를 선사했다.


<앙코르>

도미니코 가브리엘리ㅣ무반주 첼로를 위한 리체르카르 5번


첼리스트 최하영은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하고 지휘자 홍석원은 오케스트라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앉자마자 엔드핀을 접고 마치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듯이 첼로를 다리 사이에 안아 연주 자세를 잡고 수줍게 <도미니코 가브리엘리 리체르카르 5번>을 연주하겠다며 곧바로 보잉을 시작했다. 최하영의 이런 시도는 사뭇 새로운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음악적으로는 시대악기 연주스타일을 통해 그녀의 폭넓은 음악세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 근사한 경험이었다.



쇼스타코비치ㅣ교향곡 10번


< DSCH >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독일식 이름인 Dmitri Schostakowitsch의 앞 이니셜을 따서 DSCH라는 음악적 모티브를 만들었다. D-레, S-미플랫, C-도, H-시로 각 글자가 특정한 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음렬을 자신의 음악에 종종 사용했는데, 그 첫 시도가 교향곡 10번이었다. - 공연책자 인용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 최적화된 지휘자 홍석원, 그가 선사한 오늘 연주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홍석원 그가 지휘하는 쇼스타코비치를 실연으로 만난다는 기대감에 그 어떤 일말의 의심도, 지체도 없이 부산행을 결정했다. 그런 확신은 내가 오늘 이곳 부산에 온 명백한 이유이기도 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할 거란 예상을 뒤엎고 도입부터 상당히 느린 템포로 시작되는 서주부는 시종일관 여유 있는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홍석원의 대단히 명석한 전략이었다. 이런 느린 템포는 1악장 후반부와 2악장 '알레그로'의 빠른 패시지에서 완벽한 대비감을 이루며 서서히 응축된 고양감을 완벽한 타이밍과 적재적소에 파괴적인 맹폭격을 가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는 단지 지휘자의 사전 계획과 설계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단원들의 절대적인 협조와 온전한 연주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연될 수 없는 극강의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느린 1악장 서주부는 단지 템포 스피드가 느린 것이 아니었다. 이런 설정은 작품 전체에 훌륭한 밸런스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진중하고 섬세한 음향적 조화와 심리적 쾌감,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연주의 모범적 전형을 고스란히 시각화했으며, 오늘 연주를 위에서 지켜봤을 쇼스타코비치도 흐뭇한 미소로 기뻐했을 연주라는 점에서 그 어떤 찬사도 부족함이 없다고 단언한다.


2악장 '알레그로'에서 보여준 광포한 야성적인 색채감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템포 운용은 지휘자 홍석원의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바통 테크닉, 그리고 가장 온전한 해석의 전형이었다. 이토록 완벽한 <쇼스타코비치 심포니> 연주회는 국내에서도 몇 안 되는 경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는 3악장 '알레그레토'의 대비감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어느 악장 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오늘의 연주는 3악장의 탁월한 균형감각에 특히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목관 파트의 대 선전은 오늘 연주의 성공에 일등공신이었다. 과도한 음향으로 인한 음 이탈이나 1악장 중반에서 한 마디 먼저 들어오는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모든 위기 상황은 지휘자의 탁월한 리드에 자연스레 해소되었고 오히려 그 이후의 연주에서 절치부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호른을 비롯한 금관 파트의 맹활약도 잊을 수 없다. 고막을 자극하는 강렬한 음향과 여느 때보다 시원스러운 폭격은 강렬한 정화감을 안겼다. 마지막 4악장 '안단테'는 오늘 그들이 보여준 최고의 결과물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 진정 아름다운 피날레를 선사했다. 활털이 휘날리는 모습을 실연에서 목격할 때의 기쁨은 매우 크다. 잔인하리만큼 물결치는 현 파트, 특히 비올라 군의 대활약은 그들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던 내겐 더 큰 감동과 쾌감이었다. 비올라 수석과 부수석의 활털이 공중에서 춤을 추던 모습은 내게 시각적인 감동과 더불어, 이 작품에서 비올라의 활약이 이토록 주도적이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안겼다. 음반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매 순간 긴장감을 잃지 않는 지휘자와 부산시향 단원들 모두의 혼연일체를 바로 앞에서 목격한 나로선 아마도 오늘이 실연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가히 최고의 순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공연장을 찾아야만 하는 합당한 이유일 것이며 자주 목격할 수 없기에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공연은 이곳 부산문화회관을 찾은 선택된 관객들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호사이자 행운이었다. 오늘과 같은 이런 훌륭한 연주를 부산 시민만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국가적 손실이다. 오늘 공연 그대로 서울 공연이 성사된다면 나의 모든 이들에게 결코 이들을 놓쳐선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오늘 보인 부산 시민과 애호가들의 매너 있고 깔끔한 감상 태도이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몇 번의 부산공연은 큰 소음 사고나 관크 없이, 관객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다.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관람 매너를 보여준 오늘의 관객들은 이번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해준 숨은 조력자이다. 이 기회를 빌어 부산의 모든 관객들에게도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공연이 끝난 후 부산시향 정년퇴임 단원 및 직원의 환송행사가 있었다. 지휘자 홍석원의 진행으로 꽃다발이 증정되고 포디엄 위에 올라선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로 편곡된 <올드 랭 사인>을 연주했다. 오랫동안 수고한 단원을 보내는 마음을 관객과 함께 하는 모습도 좋았지만 세련된 <올드 랭 사인> 관현악 편곡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앙코르였다.


지휘자 홍석원이 올해 정기연주회를 끝으로 1년간의 부산시향 임기를 마무리한다. 그가 서울로 떠나는 것은, 부산 시민들에겐 회복하기 어려운 불행이자 슬픔이요, 서울 시민들에겐 행복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가 사임하는 이유나, 이렇게 짧은 임기로 떠날 수밖에 없는 사실에 대해 갑론을박을 논하기보다는 부산 애호가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엄청난 상실감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를 논해야 마땅하리라 본다. 훌륭한 지휘자를 잃은 부산 시민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위로를 아울러 전한다.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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