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전주시향ㅣ신년음악회 (1.16)

by Karajan

#공연리뷰


김건-전주시향ㅣ2026 신년음악회


1.16(금) / 19:30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피아노/ 예수아


지휘/ 김건 (창원시향 예술감독)

연주/ 전주시립교향악단


O. NicolaiㅣThe Merry Wives of Windsor Overture


S. RachmaninovㅣPiano Concerto No.2 Op.18


<Encore>

S. RachmaninovㅣPrelude Op.32 No.5


L. v. BeethovenㅣSymphony No.5 Op.67


창원시향의 예술감독이자 오늘의 객원 지휘자 김건은 풍부한 감성을 지휘봉에 오롯이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장신의 마른 체격이지만 표정만큼은 다채로웠는데 특히 첫 곡, <니콜라이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서곡>에서 그만의 풍성한 소릿결이 지극히 메마른 연지홀의 음향 속에서도 꽤 윤기 있는 색채를 보여줬다. 불가항력의 홀톤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른 음의 전달이 고막을 어루만졌다. 어쩌면 나로선 처음 경험해 본 맨 앞열 좌석의 위치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예수아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다. 잔향이 거의 없는 연지홀 사운드는 피아노의 울림을 완벽히 집어삼켰고 오케스트라의 총주에 속절없이 묻히는 현상은 맨 앞에 앉아도 막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 늘 여길 안 오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현실 속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데 좌석에 관계없이 '먹힌 소리'가 들리는 답답함은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오늘따라 나의 주변엔 '신종 관크'들이 여럿 포진해 있었고 음악에 집중할 수 없는 인내심의 시험장이기도 했다.(첫 곡 연주 직전에 휴대폰 소음으로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하려다 중단하기도 했다)


예수아의 연주는 명확히 판단하기 쉽지 않다. 공연장 여건이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고, 피아노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김건 지휘자와 많이 맞춰보지 못한 느낌이 강했는데 다분히 자유분방하면서도 정형화된 패턴의 연주를 하는 듯했고 때론 그녀만의 깊은 음악 세계에 푹 빠져있는 오묘한 순간도 제법 있었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선율에 출렁거리는 건반의 움직임은 무척 또렷하고 인상적이었다.


앙코르로 들려준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Op.32-5>는 오늘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안개가 낀 듯한 회색빛의 감정이 바로 이 곡에서 완전하게 걷히는 밝은 환희를 맛봤기 때문이다. 영롱하게 울리는 타건은 그녀가 낭만주의 독주곡 작품에 상당히 특화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후반부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의외로 실연으로 만나기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연주자에게 엄청난 모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 같은 곡이지만, 그렇기에 본전 찾기도 힘든 작품인 탓이다. 앞서 김건 지휘자의 스타일을 봤을 때 이 교향곡을 해석하는 방향성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정작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시향과 많이 맞춰보지 못한 것 같은 앙상블의 부조화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음향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한 부분은 제쳐두고서라도 3악장에서 극도로 불안했던 저음 현악군의 잦은 어긋남은 '절대적인 일체성'을 요구하는 이 작품에서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절치부심했던 마지막 4악장은 최대치의 출력으로 휘몰아치는 극적 총주를 선보였다. 평소에도 타격의 강도에 불만이 있었던 팀파니는 역대급 파워로 승부해 만족스러웠다. 종결부에서 강력하게 폭발해야 하는 파트에서 고의로 힘을 빼는 역설적인 시도도 있었는데 이것은 지금도 의아한 부분이다. 어쨌든 모든 힘을 쏟아내며 코다로 향하는 오케스트라의 전진은 온 힘을 다해 뿜어낸 최후의 일격으로 거대한 폭발을 보여줬다.


성기선 지휘자 이후 공석인 전주시향의 예술감독이 하루빨리 선임돼 본격적인 빌드업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무엇보다 훌륭한 음향으로 공연할 수 있는 클래식 전용홀이 이곳 전주에도 속히 건립되길 희망한다. 관객에게도, 연주자 모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문화적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고군분투하게 될 전주시향을 마음으로부터 응원한다.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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