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3번>과 첫 만남은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빈심포니의 연주 실황이다. 당시 성음 테이프로 이들을 만났지만 미켈란젤리의 DG 녹음 전집이 발매돼 이렇게 감격스럽게 재회하게 되었다. 이들을 처음 만났던 순간 느꼈던 그 떨림을 잊지 못한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현악 도입부는 당시 어린 시절의 나에게 충격적 전율을 선사했다.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성에, 줄리니의 유려하고 단단한 해석에, 그리고 미켈란젤리의 강인하고 명징한 타건에 대한 탄성이었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듣는 그들의 전설적 연주 실황은 감개무량을 넘어 경이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악장 사이 그대로 기록된 객석의 숨소리, 현의 생생한 피치카토, 고혹적인 목관의 소릿결은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두 위대한 이탈리안 거장들의 모습이 담긴 재킷만으로도 당시 이들과 함께 공감했을 관객들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분명 줄리니와 미켈란젤리의 스타일은 상극에 가깝지만 이들의 앙상블은 합리적 합의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상적 템포와 자연스러운 흐름, 그리고 서로의 방향성이 조합된 해석은 달리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노 협주곡 1번>보다 진보된 결과를 보여준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3번 이후부터 진정한 베토벤의 음악적 색채가 드러나면서 "협주곡 4번과 5번"에 이르면 완벽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곡은 베토벤 생애의 모든 작곡 활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시대, 특히 모차르트 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 속에서도 오롯이 베토벤만의 음악으로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게 했던 역사적 작품인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알리스 사라 오트의 협연 무대가 떠오른다. 당시 2악장의 가슴 시린 낭만성이 미켈란젤리의 타건에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피날레에서 돌변하는 그만의 강인함은 이전에 그가 남긴 폭발적 카리스마를 떠올리게 한다. 중화된 안정감이 이 음원의 기본적 방향성이지만 미켈란젤리의 끓어오르는 힘과 열정은 여전히 변함없다. 명쾌한 타격으로 피날레가 마무리되면 관객들이 보내는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가슴속을 벅찬 감동으로 채운다. 불멸의 전설,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의 베토벤은 내 소중한 첫사랑이자 변함없는 마지막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