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굴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연주는 가히 독보적이다. 이토록 눈부신 파괴적 템포와 무자비한 융단 폭격을 가하는 가학성은 일찌기 경험해본 적이 없다. 도입부터 느껴지는 스산한 공포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7:35]라는 1악장의 러닝 타임은 3분도 채 안 되는 느낌이다.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2악장 "안단테"가 시작된다. 특유의 여유로움 속에서도 템포는 여전히 속도를 잃지 않는다. 아타카(attacca)로 이어지는 3악장은 다시 본 궤도에 올라서며 2차 폭격을 가한다. 마치 복수심에 불타 칼을 갈고 나타난 자객과도 같은 모습이다. 타격 하나 하나에 섬세한 힘이 서려 있다. 적의 심장부를 올곧이 가르는 기술에는 놀라움과 감탄이 터져나온다. 폭풍처럼 휘두르던 날카로운 칼날은 최후의 일격을 가하며 장엄한 코다를 맺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 "테레제">는 베토벤의 연인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에게 헌정된 소나타이다. 이 곡은 연인을 향한 세레나데이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인 노래가 아닌, 격정적 사랑을 담은 소나타이다. 굴다가 보여주는 타건도 이러한 특징을 분명히 말해주듯 격렬한 스피드와 포르테시모로 화려하게 수놓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5번>은 당차고 밝은 음악이다. 특히 3악장 주제부는 트롯을 연상케 하는 발랄한 선율과 흥겨운 리듬감이 짧고 굵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굴다의 마음도 신이 난 어린 아이처럼 들판을 뛰어 노는 듯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역시 템포의 결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언제나 베토벤의 음악에는 슬픔과 아픔도, 고난과 고통도 격렬하다. 그래서 지독한 통증이 몰려 온다. 1악장과 2악장의 극단적으로 다르게 표출된 격정은 아타카로 이어지는 3악장에서 도무지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으로 승화된다. 삶의 즐거움은 잠시 뿐이며 고별을 겪는 아픔은 작은 흐느낌이 아니라 통곡임을 이 소나타는 말해주는 듯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번>이 안기는 친근한 정서와 아름다운 선율은 그의 여느 소나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리드리히 굴다가 바라보는 베토벤은 극히 단순하지만 때론 복잡하고 오묘하다. 그만의 명징한 시선은 귓가에 와닿는 음악을 명확하고 매섭게 꽂아 넣는다. 그 때문에 굴다의 베토벤 연주는 모차르트와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지녔으면서도 강력한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