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만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의 '시벨리우스'는 <교향곡 5번>이 가장 인상적이었으나 <교향곡 6, 7번>을 만난 지금, 우선순위가 바뀌었음을 느낀다. 물론 여전히 <교향곡 5번> 음원이 갖는 매력은 조금도 변함이 없지만 보다 래틀의 스타일에 부합하는 작품은 후기 교향곡임을 깊이 절감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한 판단이 아니라 연주에 스며드는 강렬한 여운이 나를 본능적으로 사로잡기 때문이다. 래틀은 발트해를 출항해 영국 북해 연안으로 우리를 이끌지만 어쩌면 이것이 "5번 심포니" 이후의 후기 교향곡을 훨씬 설득력 있게 어필할 수 있는 특별한 요소로 작용하는 느낌이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 도입은 차갑고 신비로운 현악 앙상블에 목관군의 따스한 소릿결이 살포시 얹어지며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래틀은 바로 이런 묘사에 대단히 능하다. 화폭에 담긴 핀란드의 대자연에 다이내믹한 생동감을 불어넣는 지휘자의 손길, 이에 뜨겁게 반응하는 꿈틀거리는 오케스트라의 물결은 작품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거침없이 표출한다. 투박함과 세련미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적인 특징은 래틀의 지휘봉 아래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지막 피날레는 이전 교향곡과 달리 진한 여운 속에서 서서히 사그라지듯 종결된다. 현의 울림은 짙고 풍성한 감동을 자아낸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은 유독 짧지만 내재된 선율은 깊고 심오하다. 최후의 교향곡에 담긴 '아우라'엔 극적인 긴장감이 있다. 갑작스럽게 핀란드 남서부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아우라강(Aura river)이 떠오른다. 투르쿠 도심 한복판을 흘러가는 강변의 눈부신 정경은 시벨리우스의 음악 그 자체였다. 그 풍경 속에 내가 놓여있던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하는 건 공간을 거닐던 내내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교향곡 7번>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기운은 코다에 이르는 순간까지 쉼 없이 이어지며 장엄한 울림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핀란드에서 느꼈던 시벨리우스에 대한 기억들은 래틀과 베를린필의 연주가 전하는 강렬한 흥분과 떨림에 오롯이 심취하게 한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특징이 핀란드에서 생동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나라의 모든 것이 말해준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영혼이며, 핀란드는 시벨리우스 그 자체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