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 얀손스의 말러는 매우 특별하다. 그는 평범하고 뻔한 해석을 지양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말러리안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십 가지의 음원들을 보유하고 있고 철저히 곱씹으며 다양한 연주들이 지닌 각각의 특징을 오롯이 인식하면서 음악을 즐긴다. 어떤 장르에 관계없이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들린다는 것은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얀손스의 연주는 조금만 들어봐도 그의 독보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마리스 얀손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은 이전의 RCO 음원과도 사뭇 다른 결과물이다. "얀손스표 템포 루바토"가 오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이 연주 이전의 모든 음원과 궤를 달리한다. 지난 2016년 12월 4~5일, BRSO를 이끌고 내한공연을 펼쳤던 얀손스는 드볼작과 무소륵스키, 스트라빈스키 연주를 통해 객석의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해석을 선보였다. 사실 나는 그때 '불호'의 입장에 가까웠지만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독보적인 얀손스만의 음악이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이의가 없었다. <말러 교향곡 5번> 음원도 2016년 실황이기에 그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던 그의 연주회가 또렷이 상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필연이리라.
결론적으로 내게 얀손스는 결정적인 연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말러 중에서 유니크하며 독보적으로 인식되는 음반으로서 최상위에 존재한다 할 수 있겠다. 물론 결코 컬트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개성이 강하지만 설득력은 탁월하며 공감 이상의 카타르시스도 갖추고 있기에 그의 말러는 말러리안들에게도 필수적인 음원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대상이 "얀손스"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만)에 귀를 기울여보면 굳은 신념이 더 공고해질 수도, 때로는 급격히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그게 어떤 것이라도 그때 오는 쾌감은 실로 엄청나다. 우리가 음악을 즐기는 벅찬 축복은 보통은 이럴 때 경험한다. 그것이 우리가 음악을 듣는 이유이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