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는 엄청난 속주와 놀라운 파괴력으로 피아노를 모조리 부수어버릴 것처럼 몰아치는 괴력의 연주자이다. 무려 18년 전 2005년 1월, 태국인 지휘자 번디트 운그랑세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전주순회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리스트 죽음의 무도>를 통해 그와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거구의 차력사가 선보인 충격과 전율의 퍼포먼스 그 자체였고 지금도 그 순간이 절대 잊히지 않는다. 연주 중 피아노 몸체가 뒤로 밀리는 불가사의한 물리적인 공포는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폭발적인 진기명기였다.
그날에 대해 서두가 길었던 것은 이 음원 역시 마추예프 스타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서정적인 순간의 낭만적 타건과 그가 홀로 놓였을 때 시작되는 파괴 본능은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오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민족적인 특수성과 마추예프의 내면에 내재된 피아니즘이 화학적 반응을 이뤄 얻어진 결과물일 테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가세는 마추예프의 화학 공식에 매운맛과 감칠맛을 적절히 융합하는 따스한 미소와 함께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광인의 얼굴도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이들의 연주가 주는 통쾌감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