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민의 첼로는 선이 가늘고 가볍지만 세련된 섬세함이 여백을 가득 채우는 듯하다. 순간순간 미소가 지어지는 장식음 처리도 대단히 감각적이다. 계관지휘자 정명훈의 지휘봉은 K향을 매우 안정되고 따스한 해석으로 감싸고 있다. 1악장 카덴차는 누구의 것인지 처음 들어보는 낯선 버전으로 연주되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기교적인 조화가 훌륭하다. 2악장은 따뜻하고 낭만적인 시선으로 들린다.
한재민의 보잉의 결은 그의 나이에 비해서 농익은 듯한 느낌이다. 두 번째 카덴차도 낯설지만 아름답다. 아마도 같은 버전이리라 생각된다. 3악장은 생기 있고 발랄하게 질주하는 오케스트라 서주가 감각적이다. 이에 한재민은 톡톡 튀는 강한 보잉으로 맞받아친다. 그로 인해 음이탈 마찰음이 과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패기 넘치는 젊음으로 느껴져 흥미롭다. 피날레의 깔끔하고 스피디한 끝맺음은 화끈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한재민의 연주는 첫 경험인 내게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고전주의 작품을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해석으로 접근했던 한재민의 연주는 분명하고 신선했으며 서정적인 여운과 폭발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커튼콜에 이어 <J. S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사라방드"를 앙코르로 들려준다. 한재민의 마지막 음이 사그라지고 한참 동안 정적이 흐른다. 10대 첼리스트의 연주라곤 믿을 수 없는 진한 깊이가 느껴지는 연주였다.
2부는 정명훈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 무대에 올랐다. 현의 트레몰로 위에 저음 현이 진한 선율을 한껏 수놓으며 시작되는 1악장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었던 정명훈의 지휘가 브루크너 위에 입혀지는 색다른 경험을 안겼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브루크너는 나에게는 대단히 낯선 조합이다. 예상대로 정명훈식 정공법으로 시원스러운 프레이징을 들려주고 있으며 중후하고 담백하게 들리는 독일식 해석과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현악군은 가볍고 산뜻하다. 브루크너는 필연적인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적절한 균형미로 커버하는 정명훈의 노련함은 새삼 놀랍다.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정명훈과 브루크너 조합이 던지는 새로운 감성이 나를 각성하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이순신 장군 주제로 유명한 2악장은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흐르는 선율이 K향 연주가 맞느냐는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그 여부와 관계없이 오늘 K향의 연주 자체는 감회가 새롭다. 아름답고 긴 완서악장을 다루는 지휘자의 손길은 작품을 대하는 감성이 남다름을 느끼게 했다. 레퍼토리의 확장보다는 오랜 세월 다뤄왔던 작품 위주의 선곡이 많았던 그이기에 오늘처럼 대곡을 대하는 그의 해석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오래 전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모습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후반 3, 4악장은 쾌속의 템포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시원스러운 흐름으로 내달린다. 어찌 보면 정명훈이 말러, 브람스, 베토벤 등에서 보여주던 스타일과 흡사하지만 유독 강한 면을 드러낸 쇼스타코비치의 치밀함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그만의 젊은 시절 전매특허였던 옹골찬 해석은 이제는 거의 느껴보기 어렵고 후반부 코다에서도 심하게 흔들렸던 K향의 앙상블이 더욱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의 노련함과 낭만성 짙은 감성 지휘는 충분한 공감을 불러왔다. 그러나 끝맺음은 아쉬웠다. 종반으로 흘러가면서 서서히 느슨해진 앙상블도 앞서 쌓아 올렸던 긴장감을 무너뜨린 요인이었다. 마지막 흔들림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매우 준수한 연주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정명훈의 아우라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탓이다. 라디오로 들려오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은 현장에 있는 이들에겐 분명 좋은 연주로 들렸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객석의 판단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