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은 늘 내부에서 시작된다

by 변강훈

매번 사업들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주체자 내부의 생각이 각양각색이다. 주민들은 이제 마무리되면 저 공간이 우리가 쓸 수 있는 공간이 되겠구나 생각한다. 행정은 이제 저 공간을 어느 단체나 기관 혹은 시의 다른 부서에게 줄 수 있는지 딴생각에 골몰한다. 이 결과는 결국 행정의 승리로 끝나는 게 정설로 되어 있다.


주민들은 이런 결과에 맞닥뜨리면 분노에 이르지만 힘이 센 행정을 이길 수가 없다.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망연자실한다. 그러면서 관련된 연관자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이때 대상은 주로 중간지원조직일 때가 많다. 그렇게 화풀이 대상이 되는 이유는 주민보다 행정 편에 섰을 것이란 불신 때문이다. 정보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중간지원조직이 주민을 위해 행정을 설득하지 않았다는 논리다. 그러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간지원조직에게조차 거짓 정보로 감추었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사업 목적 상 분명 건축이 끝난 공간은 애초 사업 계획에는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행정은 내부에서 새로운 공간이 생기면 탐내는 부서들이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부서 간에 협의가 잘 되어 사용권을 획득하기보다는 내부 권력자의 힘이 어느 부서인가에 따라 원하는 주민에게 보다는 힘의 논리로 사용자가 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건축이 끝나기 전에는 분명 주민 사용 공간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이렇게 주인이 달라진다.


이미, 사업과 관련되어 일해본 용역 사는 때도 없는 행정의 이런 태도변화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몇 달씩 주야장천 주민들에게 떠들어댄 입장이라 황당하기 짝이 없는 건 주민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다른 대안이 없다. 다른 대안이란 힘의 논리로 대응하는 방법인데 결국, 이 방식은 주민들이 조직화되어 있을 때만 가능할 수 있어 그렇지 않을 경우엔 등을 토닥이며 위로할 수밖에 없다.


오늘 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 관여한 사업 중 어딘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민들이 아직 못 알아채고 있다는 아쉬운 현실 때문이다. 수없이 당해 본 이런 일이 또 생겼으니 어떻게 할까나? 안타깝고 배신감에 분노하지만 이렇게 넘어가는 게 당연한가? 어쩌면 강한 저항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손을 놓을 순 없다는 생각에 이 새벽에 마음을 추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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