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처한 이방인, 내몰린 이방인

알베르 카뮈, <이방인>

by 카라마조프



"나는 내 책의 주인공이 규범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방인이다."
-알베르 카뮈-



이 사회에서 뫼르소는 아벨을 죽인 카인이요, 이단아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고

사랑과 결혼의 정형화된 형태를 깨뜨렸으며

인간의 본능인 자기 보호를 거부했다.


즉, 모르소는 사회가 정한 규정 속 허례허식을 거부한 사람이다.

부모의 장례식에서는 오열하며 슬퍼해야 한다는 당연함,

사랑을 고귀하고 위대하며 아름답게 정의해선 사랑 내 규정되는 또 하나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연인이 듣고 싶어 하는 사랑의 속삭임, 그리고 결혼) 당연함,

형량을 줄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당연함.


그 당연함을 거부했다.


왜 당연한가?

그리고 사회가 정한 그 당연함은 어디에서 기초하는가?




뫼르소는 정직했고 솔직했다.

그리고 그 정직함과 솔직함이 뫼르소를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렸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내가 권총의 매끄러운 손잡이를 쥔 가운데, 귀청을 찢으면서 동시에 귀를 틀어막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일이 시작됐다.
... 그리고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급하게 네 번 두드린 듯했다."



그가 권총으로 한 발을 쐈을 땐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이후였다.

이 사실을 깨달은 뫼르소는 물러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되려 자신에게 붙어버린 카인의 표식을 받아들이고 이에 순종하듯 네 발을 더 쏴 현실과 마주한다.




"나는 여러 달 만에 처음으로 내 목소리의 음향을 또렷이 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귀에 들린 소리와 똑같은 소리라고 파악했고, 그 모든 순간 내가 혼잣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한 말이 기억났다.
그랬다. 빠져나갈 출구가 없었다."


매정하고 차가운 진실과 자신만 남은 감옥 속에서 뫼르소는 비로소 운명을 직감한다.

출구는 없고 그 고독과 진리는 호시탐탐 뫼르소를 잡아먹기 위해 눈을 부릅뜨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천천히 간다면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너무 빨리 간다면, 땀투성이가 돼 차가운 성당 안에서 오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빠져나갈 출구가 없었다.'


이미 뫼르소의 운명은 예견된 셈이다.

죽음을 피해 갈 출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언젠가 사형선고를 받을 거야. 사제인 그 역시 선고를 받을 거야. 살인죄로 기소되었는데,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들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신에게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바라는 기도.

그것은 뫼르소에게 의미 없는 연기에 불과했다.

그에겐 내세의 영원이 지금 당장의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동정하는 게 참 우스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사형선고를 받는다.

자신과 그의 하나의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다르지 않는다.




자유로워지다.

(인간의 오만함)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은 진짜 이유는 사람을 죽여서가 아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때 슬퍼하지 않아서였다.

단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사회가 그를 비정상적이라고 손가락질하니까,

그래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우리는 그 사람의 철학,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사회가 정한 규범을 통해서만 판단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규범에 어긋나면 그 사람의 실질적인 내면은 어떻든 간에 이방인으로 낙인찍어버린다.


어쩌면 '사형선고'는 사회로부터 영원히 소속되지 못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뫼르소는 자유를 얻었다.

더 이상 거짓들을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니까. 언제나 정직한 죽음 앞에서 영원히 진실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밤이 끝나가는 가운데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이제 나와는 영원히 무관한 하나의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해아 할 점은 사회가 정한 규범, 뫼르소만의 철학 자체 그 어떤 것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비판하고 싶지 않다. 여기선 사람들의 '태도'와 '차별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카뮈의 <이방인>은 세상의 차별을 뫼르소의 다가오는 죽음의 과정으로 비유했다.


가끔 우리는 누군가의 외적인 모습이나 행위를 보고,

혹은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저렇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걸 보고

차별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모든 행위(범법행위,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하지만 정작 그 사람들의 진실된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 굉장히 차별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뫼르소의 재판에 있었던 판사이면서 검사이며 증인, 선동하는 구경꾼들, 배심원이다.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낙인찍고 사회로부터의 영원한 격리라는 죽음으로 몰고 간 당사자들이다.




이방인표지.jpg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31




*해당 글은 AI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작가의 생각을 직접 작성했습니다.*


커버 : René Magritte - Not to be Reproduced

PLAYLIST : [북클럽, playlist]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문래동 카페에서

작가의 이전글몰락 속에서 그린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