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속에서 그린 자화상

헤르만 헤세,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by 카라마조프



"우리는 몰락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클링조어는 몰락을 사랑했다.

여기서 몰락은 일반적으로 해가 지는 구조를 뜻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의 탄생이자 케케묵은 것들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전환기'를 말한다.


"당신에게 몰락으로 보이는 것이 저에겐 탄생으로 보입니다."


1900년대 초반, 세계대전과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라 유럽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왕관은 이제 빛바랜 골동품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유럽의 몰락'이라는 슬로건이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클링조어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에게 몰락이란, 낡은 것이 저물고 새로운 것의 등장인 셈이니 그는 이를 기대했고 긍정했다.


'그는 이 아름다운 작품들이 먼지가 되고 흙으로 되돌아가는 점을 사랑했다.'




클링조어는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림자는 순간마다 그에게 모습을 보인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닌, 술, 사랑, 우정에 마음껏 취한다. 사랑을 속삭이고 붉은 와인을 적시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가슴은 죽기를 원하지 않았다. 가슴은 죽음을 증오했다.'


허나 그는 생명체로써의 본능,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 본능은 자꾸 피어올라 그에게 매달린다.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자신의 미래를 창조주에게 한탄하듯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특히나 예견된 죽음에 대한 공포는 떨쳐내지 못한다.




<자화상>


어둠이 내리기 전, 노을이 마지막 붉은빛의 페인트를 세상에 흩뿌리듯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점점 소진되어 가지만 마지막 혼을 불태워 자화상을 완성한다.


클링조어는 그렇게 하나의 작품에 인생과 시대를 그려 넣었다.

그 얼굴에는 끔찍하면서 경의롭고 소름 돋는 형상들이 있었다.


... 동경함으로써 고상하게 되고, 악덕으로 인해 병들고, 자신의 몰락을 앎으로써 열광적으로 생기를 얻고, 발전을 준비함과 동시에 퇴보가 무르익는, 똘똘 뭉친 열정이자 넌더리나는 권태, 모르핀 중독자가 독에 중독되듯 운명과 고통에 중독된, 고독한, 내면적으로 약화된, 태곳적의, 파우스트이자 동시에 카라마조프...


이 자화상은 소설 밖의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담아내고 있었다.

몰락하는 유럽의 아름다움,

대립하는 두 모습을 가진 (모순적인) 하나의 인간,

몰락 이후 새로운 탄생.


'몰락은 모든 대립을 지양하고 대립쌍들을 통합하는 사고를 표현할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며, 클링조어의 자화상에서 최고조에 다다른다.'




자화상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난 이 구절이 와닿는다.


'... 죽음을 죽이기 위해 죽음에 대해 어린아이가 느끼는 공포로 가득한 동시에 권태에 지쳐 죽음에 대한 준비를 끝낸 유럽인이라고.'


몰락의 이면, 저물어감과 새로운 탄생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 그 어딘가.

초신성, 수명을 다 한 별이 마지막으로 폭발할 때,

잠깐의 번쩍임 이후의 영원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 잠깐의 번쩍임에 모든 것들을 추상적인 자연물로 표현하며 쏟아부은 자화상은 마치 클링조어의 마지막 유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시대를 압축한 하나의 역사서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클링조어의마지막여름!!.jpg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0

*해당 글은 AI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작가의 생각을 직접 작성했습니다.*


커버 : Kirchner – Self-Portrait as a Sold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