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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Aug 12. 2023

누가바의 가격은 얼마인가

누가 갑인지 항상 어려운 유통 기자의 소회


팀의 주문으로 아이스크림 가격에 대한 기사를 쓴 적 있다. 물가가 치솟자 정부가 식품업계 등을 상대로 가격 인하 압박을 한창 주문할 때의 일이다. 물가 기사는 주목도가 높은 소위 '잘 팔리는' 기사다. 비슷한 기사야 많이 썼지만 아이스크림은 처음이라 이것저것 알아볼 게 많았던 기사다.


그래서 누가바는 얼마냐면, 8월 현재 편의점에선 개당 1500원이다. 대형마트에선 1200원이고, 무인점포에선 개당 600원이다. 다이소에선 모든 바 아이스크림을 개당 1000원에 동일 가격에 판다. 뭘 했다고 두 배가 넘게 차이가 나나. 그제야 나는 이 기사를 왜 팀에서 주문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유통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물론 하겐다즈는 어디 가나 비싸다

녹기 쉽고 유통기한이 사실상 무기한인 아이스크림엔 권장 소비자 가격이 없다. 빙그레나 롯데 같은 제조사가 납품가를 통해 유통점에 공급하면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유통사가 알아서 마진을 붙여서 판다. 가격 결정의 주도권을 유통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구조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제조사들은 을로서의 고단함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원자재는 오르고 유통업체와의 관계는 녹록지 않고. 실제로 모 제조사가 납품가를 올리려고 하자 모 편의점 업체에서 통보 없이 가격 동결을 발표했다는 불평을 취재 과정에서 듣기도 했다. 제조사와 유통사 간 알력 다툼은 어딜 가나 흔한 얘기지만 직접 취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조사의 얘기를 주로 듣다 보니 그쪽으로 마음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원가가 많이 올랐고, 유통 마진가가 달라서 (가격이) 들쭉날쭉 하다' 정도로 정리했을 땐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발제 계획을 제출할 때 너무 나이브한 결론을 내린 거 아닌가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만족해도 될까 말까인 게 발제인데. 결국 아이스크림 발제는 불호령 속에 칼질을 당해야 했다. 피드백을 받으면서 부족함을 통감해 많이 부끄러웠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지난 몇 년간 다른 식품에 비해서도 큰 폭으로 올랐고, 품목에 따라서는 원가 상승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선배들의 손을 거쳐 추가됐다. 말은 안 했지만 '제조사 입장만 열심히 들으면 어떡하냐'라는 데스크의 눈초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대기업인 제조사가 무작정 을이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단 아이스크림 문제가 아니더라도 기업 간 갑을 관계나 알력다툼 등은 산업부의 단골 기사 소재다. 현재진행형인 쿠팡-CJ처럼 기업 간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관련 내용은 무조건 기사로 잡히는 발제가 된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누가 잘하고 못하며 누가 억울한지 파악하기 위해 산업부 기자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기업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과정에서 느꼈던 건, 어쨌든 기업들은 다 자기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기자를 만나는 기업인들은 본인들이 불리한 점, 노력해 왔던 점을 열심히 토로한다. 홍보팀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듣다 보니 한쪽 입장에 깊게 설득됐던 적도 몇 번 있었다(물론 기사로 쓴 적은 없다).


자기 목소리만 내는 기업들 사이에서 정확한 맥을 잡는 게 사실은 아직은 어려울 때가 많다. '일반 소비자를 위한 기사'라는 방향성은 있지만, 정확하게 전달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기업 기사에서 정확하면서도 공정하게 쓰는 건 저연차인 나 혼자만으로는 아직 어려운 일이다. 산업부 기자들이 대체로 고연차인 이유도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선배들은 그런 이야기를 찾는 게 기자의 재미라고도 말했다.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집 앞에서 쉽게들 사 먹는 누가바에도 이런 얘기가 있을 줄은 어떻게 알았나. 무인점포에서 사 온 6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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