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 연애가 드러낸 '이상한' 아이돌 세계
에스파 카리나 연애의 후폭풍(?)이 아이돌판을 중심으로 시끄럽다.
한창 현역인 정상급 아이돌의 연애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려니 싶지만, K팝 인기로 극성맞은 외국인 팬들이 분노하며 그 규모가 커진 듯한 느낌이다(일부 외국인 팬들은 국내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외퀴'라는 멸칭으로 불릴 만큼 과몰입 정도가 센 편이다). 열애설 다음날 행사에 충성팬으로 불리는 '홈마(대포카메라를 들고 한 아이돌 사진만 찍는 팬들)'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까지 도는 걸 보면 국내 팬들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344559?sid=102
일반인들 입장에서야 '연애할 수도 있지'라는 반응이 대다수고 이 역시 맞는 말이지만, 이 바닥의 구조를 생각했을 때 생각보다 독특하고, 결정적으로 안타까운 문제다. 개인적으로 아이돌판을 오래 봐 온 입장에서, 열애설 하나가 아이돌 산업의 구조를 이렇게까지 드러낸 건 오랜만이지 싶다.
K팝과 아이돌 문화가 발전하면서, 아이돌 산업은 코어 팬층에게서 '관계성'을 통해 돈을 버는 BM으로 자리 잡았다(유사 연애라는 표현이 많지만, 여러 측면에서 관계성이라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아이돌에 빠진 팬이 스타와 연결돼 있다는 유대감으로 자연스레 효능감을 얻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갑을 여는 구조다.
그렇기에 팬의 입장에서 스타는 만나기 쉬우면서 동시에 어렵다. 인터넷이나 매체로만 아이돌을 만나는 '랜선 팬질'은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컴백 준비는 어떻게든 돼 가고 있으며 활동기에는 어떤 방송에 나오는지 마음만 먹으면 다 찾아볼 수 있다. 소속사가 자체적으로 스타들을 위한 라이브 방송 앱을 운영하는 건 기본이다. 카리나가 속한 에스파 역시 버블이라는 어플로 멤버들이 직접 라방을 해왔다.
하지만 직접 만나거나 나에게만 원하는 특별한 것을 받는 건 웬만한 시간과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돌 덕질의 꽃으로 불리는 팬사인회가 대표적이다. 앨범을 많이 살 수록 당첨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 번 활동기가 되면 팬들은 듣지도 않을 CD를 수십 장에서 수백 장까지 산다. 특별한 굿즈의 대표 격인 아이돌 개인 폴라로이드 사진 역시 이벤트 정도를 통해서나 한정된 수량을 푼다. 이 역시 응모를 위해선 지갑을 열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산업을 지탱하는 건 팬들의 열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속사는 팬들의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사 아이돌들과 팬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전략을 쓴다. 아이돌들 역시 이를 알고 있어 팬들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쓴다. 당연히 스타들의 진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고, 팬들 역시 덕질이 비효율적인 과정이란 걸 잘 안다. 스타와 팬의 미묘한 유대감으로 이어가는 비즈니스가 아이돌 산업의 기본이다.
아이돌의 연애는 이 미묘한 비즈니스를 직접적으로 깨뜨린다. 팬 입장에선 자신들을 먼저 바라봐줄 줄 알았던 스타의 다른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6~7년 차 정도가 된 고연차 아이돌들은 열애설이 터져도 팬들이 오히려 나서서 축하해 준다는 점이다. 팬들을 위해서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제 본인의 삶을 찾으라는 걸까. 일종의 의무 복무 같은 문화가 있는 셈이다.
카리나의 연애설이 시끄러운 것도 이 부분이다. 이 바닥에서 에스파는 데뷔 만 4년이 되지 않은 한창 현역에 속하는 아이돌이다. 업계 평균으로 볼 때 아직 의무 복무 기한이 끝나지 않았다.
돌판 내 에스파의 위치 역시 불씨를 키웠다. 거대 소속사를 등에 업었지만 뉴진스, 르세라핌 등 후배 아이돌과의 경쟁으로 쉽지 않은 상황. 어디나 그렇듯 아이돌 팬덤도 '내 새끼'가 1등이 되기를 원한다. 카리나가 속한 에스파는 올해 중 힘을 빡 준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었다. 팬들의 입장에선 힘이 빠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팬들이 분노는'프로답지 못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어느 해외팬은 '유지민에서 카리나가 되기로 했으니 카리나라는 인생에 책임을 져야지'라고 했다. 팬들이 원했던 건 한창 연애할 나이인 한국나이 25세 유지민이 아닌 에스파 리더 카리나다.
개인적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 20대 나이에 연애하나 눈치 보이게 만드는 산업구조부터, 이를 이용한 모 매체, 아티스트를 지켜주지 않은 소속사 모두 비뚤어진 현실을 반영한다 싶었다. 동시에 이 현실이 지금 K팝이 도달한 곳이고 핵심 BM이라고 생각하니 팬들의 분노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싶다. 이러나저러나 아이돌 역시 소속사에 속한 계약직 사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결국 이번 열애설이 K팝 아이돌의 이상한 일각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보다 성숙한 방법은 없는 건지. 상황은 좋지 않아도, 나아지는 단초가 되길 바라본다.
배경사진: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