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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Mar 03. 2024

유지민 vs 카리나

카리나 연애가 드러낸 '이상한' 아이돌 세계


에스파 카리나 연애의 후폭풍(?)이 아이돌판을 중심으로 시끄럽다.

 

한창 현역인 정상급 아이돌의 연애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려니 싶지만, K팝 인기로 극성맞은 외국인 팬들이 분노하며 그 규모가 커진 듯한 느낌이다(일부 외국인 팬들은 국내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외퀴'라는 멸칭으로 불릴 만큼 과몰입 정도가 센 편이다). 열애설 다음날 행사에 충성팬으로 불리는 '홈마(대포카메라를 들고 한 아이돌 사진만 찍는 팬들)'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까지 도는 걸 보면 국내 팬들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344559?sid=102


일반인들 입장에서야 '연애할 수도 있지'라는 반응이 대다수고 이 역시 맞는 말이지만, 이 바닥의 구조를 생각했을 때 생각보다 독특하고, 결정적으로 안타까운 문제다. 개인적으로 아이돌판을 오래 봐 온 입장에서, 열애설 하나가 아이돌 산업의 구조를 이렇게까지 드러낸 건 오랜만이지 싶다.




K팝과 아이돌 문화가 발전하면서, 아이돌 산업은 코어 팬층에게서 '관계성'을 통해 돈을 버는 BM으로 자리 잡았다(유사 연애라는 표현이 많지만, 여러 측면에서 관계성이라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아이돌에 빠진 팬이 스타와 연결돼 있다는 유대감으로 자연스레 효능감을 얻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갑을 여는 구조다.


그렇기에 팬의 입장에서 스타는 만나기 쉬우면서 동시에 어렵다. 인터넷이나 매체로만 아이돌을 만나는 '랜선 팬질'은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어디서 뭘 하는지, 컴백 준비는 어떻게든 돼 가고 있으며 활동기에는 어떤 방송에 나오는지 마음만 먹으면 다 찾아볼 수 있다. 소속사가 자체적으로 스타들을 위한 라이브 방송 앱을 운영하는 건 기본이다. 카리나가 속한 에스파 역시 버블이라는 어플로 멤버들이 직접 라방을 해왔다.


하지만 직접 만나거나 나에게만 원하는 특별한 것을 받는 건 웬만한 시간과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돌 덕질의 꽃으로 불리는 팬사인회가 대표적이다. 앨범을 많이 살 수록 당첨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 번 활동기가 되면 팬들은 듣지도 않을 CD를 수십 장에서 수백 장까지 산다. 특별한 굿즈의 대표 격인 아이돌 개인 폴라로이드 사진 역시 이벤트 정도를 통해서나 한정된 수량을 푼다. 이 역시 응모를 위해선 지갑을 열어야 한다.


아이돌 산업을 유지하는 건 팬들의 열정이다. 출처: X 등


당연하지만 이 모든 산업을 지탱하는 건 팬들의 열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속사는 팬들의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사 아이돌들과 팬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전략을 쓴다. 아이돌들 역시 이를 알고 있어 팬들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쓴다. 당연히 스타들의 진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고, 팬들 역시 덕질이 비효율적인 과정이란 걸 잘 안다. 스타와 팬의 미묘한 유대감으로 이어가는 비즈니스가 아이돌 산업의 기본이다.




아이돌의 연애는 이 미묘한 비즈니스를 직접적으로 깨뜨린다. 팬 입장에선 자신들을 먼저 바라봐줄 줄 알았던 스타의 다른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6~7년 차 정도가 된 고연차 아이돌들은 열애설이 터져도 팬들이 오히려 나서서 축하해 준다는 점이다. 팬들을 위해서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제 본인의 삶을 찾으라는 걸까. 일종의 의무 복무 같은 문화가 있는 셈이다.


카리나의 연애설이 시끄러운 것도 이 부분이다. 이 바닥에서 에스파는 데뷔 만 4년이 되지 않은 한창 현역에 속하는 아이돌이다. 업계 평균으로 볼 때 아직 의무 복무 기한이 끝나지 않았다.


돌판 내 에스파의 위치 역시 불씨를 키웠다. 거대 소속사를 등에 업었지만 뉴진스, 르세라핌 등 후배 아이돌과의 경쟁으로 쉽지 않은 상황. 어디나 그렇듯 아이돌 팬덤도 '내 새끼'가 1등이 되기를 원한다. 카리나가 속한 에스파는 올해 중 힘을 빡 준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었다. 팬들의 입장에선 힘이 빠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팬들이 분노는'프로답지 못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어느 해외팬은 '유지민에서 카리나가 되기로 했으니 카리나라는 인생에 책임을 져야지'라고 했다. 팬들이 원했던 건 한창 연애할 나이인 한국나이 25세 유지민이 아닌 에스파 리더 카리나다.


개인적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 20대 나이에 연애하나 눈치 보이게 만드는 산업구조부터, 이를 이용한 모 매체, 아티스트를 지켜주지 않은 소속사 모두 비뚤어진 현실을 반영한다 싶었다. 동시에 이 현실이 지금 K팝이 도달한 곳이고 핵심 BM이라고 생각하니 팬들의 분노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싶다. 이러나저러나 아이돌 역시 소속사에 속한 계약직 사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결국 이번 열애설이 K팝 아이돌의 이상한 일각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보다 성숙한 방법은 없는 건지. 상황은 좋지 않아도, 나아지는 단초가 되길 바라본다.


배경사진: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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