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쉰 지 꽤 되었다.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굳이 애를 쓰는 것이 싫어졌다. 될 인연은 어떻게든 된다는 운명론을 핑계로 싱글의 자유를 더 누리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소유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감정이 보상심리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삐그덕 대기 시작한다. 자신의 노력만큼 인정받지 못한다는 마음의 몸부림이 과해지면 매력은 반감되기 마련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음악은 부자연스럽다. 온 세상이 핑크빛처럼 느껴지는 연애 초반처럼 순간의 끌림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고유의 어법과 매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아티스트 스스로가 먼저 자신이 만든 가면에 상처받고 지치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가수 아이유가 있다. 데뷔 초 아이유의 노래와 콘셉트는 엄청난 인기와 함께 순식간에 많은 팬을 보유했다. 한동안의 휴식 후 세 번째 앨범 'Modern Times'를 냈을 때 팬들의 반응은 갈렸다. 아마 진심으로 아이유를 응원하는 팬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아이유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변신을 시도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네 번째 앨범 'Palette'부터 그녀의 의도는 점점 더 확고해졌다. 수록된 음악들은 놀랍게도 아이유의 음악이 자고 나란 홍대의 인디밴드 음악을 뿌리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미니 앨범 'Love Poem'은 불필요한 요소를 들어냄으로 훨씬 간결해졌고 그로서 더 깊어졌다. 앞으로 만날 그녀의 음악은 더 심플해지고 가사의 울림에 무게를 맞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아마 아이유는 평생 음악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치지 않고 오래 이어갈 자신만의 색깔을 찾았으니 말이다. 만약 그녀가 유명세만을 의식해 스스로 껍질을 깨는 치열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기억 속에 뮤지션 아이유가 아닌 한때 어리고 핫했던 유명인 아이유만 남지 않았을까.
현시대에도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지만 20세기 초중반 거장들의 연주가 유독 깊이 와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시기의 거장들은 자신이 해석한 작곡가의 의도를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미디어가 발전한 요즘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없던 시대의 흐름도 한몫하는 것 같다. 어떤 참고서도 없이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은 전통에만 의지해 만든 음악에 연주자 고유의 개성이 더해진 결과다. 그래서 그들의 연주는 의도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물 흐르듯 펼칠 뿐이다. 남을 의식하기는 커녕 역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음악은 더없이 솔직하고 진정하다.
사람도 그렇다. 타인의 인정보다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사람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꾸준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진 이들은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이 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반대로 상대를 맞추느라 어울리지 않는 옷을 겹겹이 갖춰 입은 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려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괴로운 일이다.
잘하려는 마음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그 방향은 어디까지나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건강한 나를 성장시킬 때 타인을 품는 여유로움 또한 생기는 게 아닐까.
무대도 결국 연주자 자신이 만족하는 연주가 가장 좋은 연주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지만 연주자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펼칠 때 관객도 깊이 공감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이왕 잘하고 싶은 거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하자. 사랑도 음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