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홍수, 쉼 없이 달리는 머릿속
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 생각들은 나의 의지로 인해 남아 있는 생각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남아있는 채로 자기 멋대로 생각을 자가증식하는 그런 불청객들이 많다. 소위 말해, 라면그릇을 머리에 끊임없이 얹어둔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이 많은 사람들은 고민하는 자신을 즐긴다는 말도 있던데, 즐기지 않는 걸 봐서는 내가 고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내가 그를 끊을 수 없는 점과는 별개로.
생각이 왜 이렇게 많을까,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다가 질식해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언제나 베이스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이 많다 보니, 때때로 긴장이 풀리고 나면 건강이 좋아질 수 없는 것은 잘 연결된 상수 같은 느낌이다. 비록 연휴 중 절반을 일했지만, 나머지 절반인 4일이라도 온전히 쉴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나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몸이 이미 좋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회복의 순간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좋아하는 글도 쓰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런 기대는 그러나, 언제나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물로 다가온다. 휴일을 지나 다시 오늘 업무를 시작하는 이 날까지 내가 쓴 글이라고는 연재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간신히 써낸 현 브런치북의 한 단락일 뿐,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나는 한데 모을 수 없었다. 모아지지 않으니 써질 글도 없었고, 정리되지 않은 글자 속에 파묻혀 나는 더더욱 몸살이 심해져만 갔다. 꿈으로 도망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지난 십 년이 지날 동안 얼굴도 기억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이 또다시 떠올라, 팔 한쪽, 다리 한쪽으로 붙잡아 나를 끌어내렸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그런 말을 했다. 이미 번아웃이 와 버린 상태기 때문에 조금 더 길게 쉬셨으면 좋겠다. 내가 힘들어하면 같이 힘들어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걱정 어린 눈빛과 이기심 섞인 마음을 가감 없이 표출한다. 그런 말을 들으며 내 눈은 물끄러미 그 손끝을 바라보면서 또 생각의 홍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괜찮았었는데 왜 시간이 주어질수록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신기한 일이다. 마치 스스로가 괜찮다고 느끼기 위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는 것처럼, 오히려 일이 없는 나는 쉬지 못하고 스스로의 정신을 더욱이 혹사시키는 그런 기분마저 든다. 되려 일을 할 때에서야, 무언가 집중해서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면 내 모든 뇌세포가 그곳을 향해 달려들어 스스로는 그 순간에 더 편해지곤 한다. 마치, 조금의 틈이라도 주면 나를 이루는 모든 신경이 나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제 뭘 해야 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강박감, 그 강박감은 자신 스스로가 속박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당연히 이러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받는 기대를 충족시키려면 당연히 이 만큼은 해야 하는 거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까. 또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남아달라고 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과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진짜 나 스스로를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쨌든 다들 자기 좋을 대로의 틀 속에 나를 박아놓고 재단하며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을.
사회화된 나라는 것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 진정한 내가 없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좋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나는, 어찌 보면 만들어진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그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연휴에 나는 다시 내 텐션을 되찾아 조금은 가라앉고, 조금은 염세적인 시선으로 세상도, 타자도, 그리고 내 생각들도 바라보고 있지 않나.
어쩌면 브런치에서조차 나는 잘 차려입은 나 자신에 빠져, 원래 이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했던 나를 점점 더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정말로 토해내고 싶었던 그런 이야기가 아닌 잘 정제된, 읽기 좋은, 작가라는 이름에 취해, 구독자수에 취해 정작 되어야 할 나를 버리고 되고 싶은 나를 또다시 틀에 박아 넣은 채로 살아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안식처로 들어온 이곳을, 또다시 도피해야 되는 그런 상황. 지금이라도, 어쩌면 인식해서 다행인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몸살이 나를 잡아먹는 순간부터, 주삿바늘이 아무리 타고 들어와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에서부터, 나는 여전히 고민을,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또다시 내일 되면 거짓말같이 일어나 남들이 보기에도 좋은 아주 멋있는 글을 쓸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에게 어른으로서 마음에 힘이 되는 말들을 무제한으로 해주는 본받을 만한 어른의 자세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내일의 내가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어쩌랴 하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을 보니 내 마음 한 구석에도 어딘가 스스럼없는 여유는 생기도 있는 모양이다. 아직은 마흔이 되지 않아서, 내년부터는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고 지금 이렇게 끊임없는 유혹과 생각에 빠져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연휴가 끝난, 10월의 어느 금요일의 저녁. 그렇게 나는 지금 또다시 생각에 파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