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언제나 순간의 어긋남이 아프게 다가온다

by Karel Jo


봄, 따사로운 날씨, 오히려 조금은 덥게 느껴질 정도의 포근함과 답답함의 경계선. 늘어선 벚꽃나무에 꽃잎들이 어느새 후드득 떨어져 버린 길바닥을 보면서 그렇게 봄을 체감하게 된다. 짧은 꽃샘추위를 뒤로 하고 다가온 봄.


겨울 내내 움츠러들었던 마음도 조금은 풀리게 되는 걸까. 점심시간 식사를 마치고 공연히 사무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뜻이 맞아 여의도 공원 근처를 서성이게 된다. 특별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저 초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듯이. 잠시라도 숫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이라는 마음으로.


공원에는 나와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반팔을 입으신 분, 긴팔을 입으신 분, 기묘한 날씨에 계절감을 알 수 없는 옷차림들 사이로는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한 무리가 있는가 하면, 짐짓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부여잡고 벤치에 앉아 통화를 이어가는 분도 있다. 삶이란, 각자의 군상으로 오늘도 그렇게 흘러가는 중이다.


나는 산책이라는 것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걷는 걸 싫어하지는 않지만, 바깥 활동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보니 태양 아래에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 특별히 선호하지 않을 뿐이다. 되려, 만약 그 자리 어딘가에 테라스가 멋진 카페에 야외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밀크티 한 잔과 스콘 한 조각으로 그저 삶의 단편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문득, 걷던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돌아가면 또다시 지리멸렬하게 싸워야 할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전에도 무수히 많은 다툼과 갈등 속에 이미 지친 마음을 그저 붙들고만 있었던 참이다. 그러나 홀로 길을 걷는 지금은 그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의 갈등이란 왜 생기는 걸까ㅡ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나 혼자만의 시간에서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생기지 않는다. 기쁘고, 슬프고, 힘들고, 행복한 것 또한 온전한 나만의 감정이기에. 나는 나를 보면 되었다. 그럼 갈등은 필연적으로 타인에게서만 온다고 봐야 하는 걸까?


나와 반대되는 목소리,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 눈빛에서 느껴지는 불신과 분노. 대상을 나로 하는 다양한 타인의 감정 공격은 파상적이고, 정교하지 않다. 몇 개는 받아쳐내 나에게 들어오지 않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엔 나 자신도 상처 입게 된다. 그의 반작용으로 나 또한 상대에게 무차별적으로 나를 투사하며 스스로를 방어하게 되고.


각자의 입장과 태도를 이해시키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를 말로 풀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관계라면 더더욱이나 그럴 것이다.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 이 정도까지 아직도 말해 줘야 하나. 어쩌면 감정의 충돌은 기대감에서 올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분노하지 않을 테니까.


분노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다시 주변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 또한 그에게 점점 포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내가 속한 공간 자체를 포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웃고 떠들며 나의 기대감을 그들에게 주입하겠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저 멀리 떨어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돌아가면 또다시 감정의 파도가 나를 뒤덮을 것이다. 작은 것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또다시 보이지 않은 채로. 태풍은 맞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라 하였으나, 때로는 그저 살아남기를 기도하며 맞을 수밖에 없는 시기도 있다. 그리고 그 살아남음 뒤에, 다시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감정 진폭이 점점 낮아지는 걸 느끼면서 분노가 포기로, 포기가 무기력으로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건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꽃 한 송이 건져갈 수 있는 하루면 오늘은 좋은 하루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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