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안아줘야 할 때
때로 그런 날이 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숨긴 어린아이처럼 주눅 들 때. 어릴 때 어머니에게 수업 준비물을 사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뽑기나 군것질거리 따위를 사 먹고 잔돈이 없다고 거짓말하던 때처럼, 내 행동 하나하나에 움츠러들 때가 있다.
때로 그런 날도 있다.
모두가 내 주변에서 항상 나는 최고라고 칭찬하고, 치켜세우고, 진심 어린 눈빛으로 고마워하고 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시켜 줄 때,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돌아서는 순간 모두가 날 비웃고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피해의식에 빠져버릴 때가 있다. 마치, 모두가 앞에서 나에게 웃으며 사실은 내 적이 되고 싶어 한다는 그런 망상, 또는 현실에.
때로 그런 날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때, 다시 사람들의 말이 힘 있게 들리기 시작하고, 모두가 다 내 편이고 이들과 함께라면 내가 지금의 힘듦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 웃음이 웃음으로 보이고, 상대방의 눈동자 반대편에 더 이상 숨겨진 칼날이 아닌 나 자신을 안아줄 수 있는 갈대숲이 보이는 순간. 겨울임에도, 따스한 이불 안에서 편안한 것처럼 춥지 않은 그런 때가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무너지는 때가 온다.
덧없이, 다시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을 때. 분명 나 스스로의 어두움을 감추기 위해 모두를 밀어냈음에도. 몰려오는 외로움을 견딜 길이 없어 이기적으로 누군가 말을 걸어주었으면, 손을 잡아주었으면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가시 돋친 말로 오는 자의 발걸음을 되돌려 보내는 그런 때에 빠져 버린다.
사람의 우울이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수렁에 빠져 버린 상태일 것이다. 일 년 365일 중 그런 날이 많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반갑지 않은 친구의 연락이 때로 더 잦은 것처럼. 그는 나에게 그렇게 찾아와 아무리 눈치를 줘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나 자신을 안아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 스스로를 보듬어주어야 한다.
한 번이라도, 한 순간이라도.
이래도 괜찮다고, 주저앉아도 언젠간 일어난다고.
그렇게, 하루를 또 이겨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그런 날이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