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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누리시면 되죠

우울증 완치, 꼭 강박적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다

by Karel Jo


우울증이란, 사람의 마음을 뿌리 깊은 속에서부터 갉아먹어 오는 마음의 감기다. 표현에 비해 감기 정도의 질병에 빗대다니,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닌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감기란 얼마나 사람의 일상생활을 귀찮게 하는가.


목이 부어 침을 삼키기 어려울 때도, 잔뜩 가버린 목소리를 상대방이 들으며 약간 불편해하는 걱정을 느낄 때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뻐근해진 몸을 제대로 가눌 길이 없어 웅크린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때에도.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주 작지만 사소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흔히 생각하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매번 눈물을 흘리고 있거나, 표정이 죽상이거나,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공허한 표정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모든 사람의 증상이 같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다만, 나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 않았다.


물론 출퇴근 길 정말 작은 자극에도, 눈물을 흘리는 사연 있는 사람이 되기 일쑤였고, 생각이 많은 성격 탓에 어떤 일이 생겨도 그 일의 가장 안 좋은 결과물을 상상해 낼 수 있는 저주받은 능력이 있었다.


거기에 나는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하는 망각이라는 시간의 반감기가 너무나 길어, 진작에 지워냈어야 할 시간도 어느 순간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막지 못했다.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없는 감정의 폭풍과 소용돌이에 스스로가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정신과와 상담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관문을 열 마음조차 들 수 없는 날에도, 저 문만 한 발자국 나가서 더 앞으로 가자, 어떻게든 나아가 보자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치료를 받으면서 분명 나 자신도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고, 사실 그때 나는 굉장히 궁금했었던 것 같다. 이게 차라리 다리가 다치거나 한 거라면, 완치 판정이 나올 텐데 우울증은 어떻게 완치 판정을 받는 걸까?


나의 그 질문에, 당시의 정신과 선생님께서 항상 해 주셨던 말씀이 있다. 그때 나는 병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약을 먹어서 좋아지는 건지, 약을 그러면 계속 먹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순수한 불안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보통의 우울증 치료에 쓰는 약은 중독성이 거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언젠가 단약을 하는 순간에도 다시 그 약을 먹지 않으면 되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이 말을 덧붙이며, 온화하게 웃으셨다.


선생님 같은 분이 참 좋으신 분이어서, 삶이 완벽해야 하고 책임감이 강하셔서 삶이 고되시죠.

그런데 괜찮아요, 약 때문에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계시다고 생각되시면,
그러면 그걸 지금 누리시면 되죠.

우리는 원래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거니까요.


‘누리다’는 말이, 내심 새롭게 들려오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어쩌면 나는 내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우울하지 않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우울증이 아니라면 어떨지가 사뭇 무서웠다.


마치, 우울증만이 나의 이유고, 그게 아니라면 나 자신이 설 곳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처럼. 또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지내 왔기에, 우울하지 않았던 때가 언제였지? 하고 어디까지 나를 거슬러 되돌려야 하는지를 몰라 불안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때의 말씀을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분명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약을 먹던 시기에 비하면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나 자신 또한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로 방황하는 날이 없다고는 말은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의 종일에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입증하며, 내가 왜 지금에 필요한지를 나 자신에게 설득하는 시간은 분명히 줄어들었다. 힘들지만, 즐겁게 글을 쓰고 있고, 나는 좋았던 자신을 만나러 조금은 분명히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과연 이게 낫는 병인가, 언제 낫는가, 미래가 확실히 달라질까에 대한 불안감, 또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절망감에 자기 자신을 방치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분들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나 또한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을 돌려 드리고 싶다. 자신이 괜찮았다고 생각한 그때로 분명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온다면, 위화감 없이 그를 온전히 누리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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