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한 잡설
출근길이 한 시간 이상 넘어가게 되면 직장인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다. 버스를 타는 직장인이라면 그래도 앉아서 모자란 아침잠이라도 보충하겠지만,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라면 앉을자리는커녕 콩나물시루에 내 몸이 온전히 서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하는 일뿐이다.
나 또한 출근길 버스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브런치 앱을 켜고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출근길을 이겨내고 있지만, 글을 쓸 때 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그러니 출근길의 직장인은 잠을 자지 않으면 무언가를 꽂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출근길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은 상태에서 졸린 눈도 아닌데 멍하니 있는 사람이라고.
음악을 언제부터 들어왔을까?라는 질문에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등학생일 때, 아직 카세트테이프가 대세였던 시절에는 아버지 차를 탈 때나 듣는 게 음악이었다. 지금처럼 모음집이나 한 곡 한 곡을 고를 수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 가수의 테이프를 사면 그가 낸 앨범 전곡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모음집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녹음 기술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는 보통 라디오를 들으셨던 모양이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자 소니의 CD플레이어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여전히 이 때도 '음반'을 구매하는 개념이었지만 그래도 테이프보다는 모음집을 만드는 건 용이했다. 지금의 '재생목록'개념이 보편화된 건 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추억에 빠질 수밖에 없는 아이리버의 삼각형 'MP3'가 등장했을 때부터였다.
물론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 나가보려 했던 MD파가 있었다. 당시 MP3의 용량이 보통 128Mb, 커봐야 256Mb였으니 한 곡당 크기를 감안하면 잘 쳐줘야 30곡-60곡 정도를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MD파는 듣고 싶은 걸 매번 지우고 넣어서 불편해서 어찌 쓰나?라는 논리로 MD의 미래를 점쳤지만 뭐, 결과는 아시다시피 저장장치 용량 단위가 기가, 최근엔 테라로 급증하면서 MD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았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의 플레이리스트는 MP3가 보편화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에야 멜론 또는 유튜브 뮤직,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지만 2000년 즈음은 벅스 아니면 소리바다였다. 당시의 나는 국내 음악은 최신 가요를 들었고, 해외 음악은 오아시스나 뮤즈, 린킨파크 같은 밴드 음악을 주로 들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매년, 매 월마다 신곡이 나올 때마다 갱신되고 나온 지 오래된 노래들은 기억의 저편 뒤로 보내버렸다. 매주 TOP100 이 갱신되는 순간이 나의 재생목록도 업데이트되는 순간이었고, 그렇게 셀 수도 없는 노래들은 나의 귀를 거쳐갔다.
체코에서 외노자 생활을 할 때도 재생목록은 꾸준히 업데이트되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더 이상 MP3를 따로 갖고 다닐 이유는 사라졌고, 벅스에 비해 후발이었지만 사용자 친화적인 UI와 요금을 앞세운 멜론이 그렇게 스트리밍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의 재생목록은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고 오히려 과거를 역행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국내 기준으로 내가 마지막까지 그나마 따라갈 수 있는 유명한 가수는 블랙핑크였는데, 그마저도 데뷔한 지 벌써 8년이 되지 않나. 요새는 다시 첫째 딸 덕분에 아이돌 노래를 듣게 되곤 했지만 나는 점점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예전 노래를 더 찾게 되었다.
어느 날은 그래서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딸이 좋아하는 아이브 노래를 잠시 멈추고 내가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고, 두어 곡쯤 듣다가 아내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언제 적 노래야 이거, 내가 고등학생일 때 Kpop 시절 노래 아니야?"
"뭐... 나도 나이 들었는데 어쩌겠어"
아내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아저씨네"라고 말하고는 뒷자리에 다시 몸을 기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나와 같이 노래를 들으며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어디에선가 그런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30살 이상이 되면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들으려 하지 않고 과거에 들었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경향이 생긴다는 글이었는데, 지금 나를 빗대어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특별히 요즘 노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찾아 들으려 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직까지는 노래는 옛날 노래가 최고지라고 말하는 라떼 시절의 꼰대까지 나아간 건 아니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나온 지 20년, 30년 된 노래만 들으며 '명반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시간이 언젠가도 나에게는 오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아마도, 나이가 들수록 재생목록이 점점 시대를 역행하는 것은 현재의 지친 나를 과거의 향수로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조금 더 힘이 있었고, 조금 더 무모할 줄 알았고,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도 기꺼이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었던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를 보내어 그 기운을 조금이라도 얻어 보려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마치는 내 귀에는 대학생 때 자주 듣던, 20년도 더 지난 노래가 흘러나오며 나에게 힘을 주고 있다. 변하지 않는 이 노래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겠지. 점점 라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늙지 않는 나의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그렇게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