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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돌이의 시대를 지나, 우리는 정품을 배웠다

게임으로 들여다보는 저작권 인식의 진화

by Karel Jo


90년대 후반-200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민 PC인 '펜티엄 3'과 'ADSL'의 존재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로, 학교가 끝나고 나면 한 시간에 1500원-2000원 하던 PC방으로 가서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 식스,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 등 게임을 정신없이 즐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컴퓨터를 샀을 때 더 이상 PC방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에 취했다.


당시에 컴퓨터 가격은 굉장히 비싼 돈을 주고 샀어야 했던 물건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최고급 그래픽 카드를 고려한다면 컴퓨터는 비싼 물건이지만, 사양을 조금만 타협하면 그렇게까지 컴퓨터가 비싸서 못 사는 제품은 아닌 것에 비하면 꽤 다른 위상인 셈이다. 국민 PC라고 이름 붙었던 컴퓨터들의 가격도 백만 원은 여전히 훌쩍 넘었고,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여전히 고가의 물건으로 구매에 큰 결단을 필요로 했다.




컴퓨터 가격이 그렇다 보니 게임 가격도 그리 싼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대항해시대라든지, 코에이 게임이라든지, 국내 게이머들의 향수를 불러오는 창세기전이나 손노리의 게임들은, 그때도 이미 약 4-5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 비싼 컴퓨터 가격과 맥을 같이 했다. 그리 되니 부모님들이 게임이라는 취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게임 시디 한 장 사는 것조차 큰맘 먹고 사야 하는 비싼 선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수요가 많은데 가격이 높을 때,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암거래, 암시장 등, 불법복제에 대한 유혹이 시작된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우리에게 '복돌이'는 그렇게 찾아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용산 전자상가나 동네 컴퓨터 매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불법복제 CD를 만원 정도 되는 싼 가격에 판매했으며, 어떤 반 친구는 집에 CD 라이터기를 갖고 있어 친한 친구들에게 "내 말만 잘 들으면 브루드워랑 조조전 구워줄게!"라고 반에서 큰소리치며 다니던 모습도 아직까지 눈에 선한 익숙한 광경이다. 그만큼 그때는, 정품을 사는 사람=돈 많은 부자로 인식되는 그런 시대상이었다.




거기에 불을 더 지핀 건 초고속 인터넷이 각각의 가정으로 보급이었다. '와레즈'나 '소리바다'같은 파일공유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는 구울 필요 없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다운로드 버튼 하나만 눌러 놓으면 내가 원하는 컨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넘쳐났다. 자연스럽게,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 결과, 한국이 저작권의 불모지로 인식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이 정식 발매되는 케이스도 줄어들었다. 어차피 패키지 게임을 판매해 봤자 불법복제나 다운로드가 성행하던 한국에서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임회사와 유통사들은 정식발매를 꺼리고, 아이러니하게 그렇기 때문에 각종 '한글패치'가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는 한국에서 정품을 즐기는 문화가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스팀(Steam)'의 등장에 정품게임에 대한 판세는 완전히 변하게 된다. 과거와 달리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 따라 버그도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패치의 빈도도 잦아져 심지어 발매 당일 데이원 패치를 하는 경우도 흔하게 되자 불법 다운로드에 큰 불편함을 주었다.


거기에 경제성장에 따라 올라온 구매력에 비해 게임은 5년 전만 하더라도 여전히 5-6만 원대에 머무르며 20년 전의 게임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스팀 플랫폼의 간편함과 편의성, 그리고 정가도 비싸게 느껴지지 않지만 거의 매주마다 각기 다른 장르를 지속적으로 할인판매 하는 등 합리적인 가격으로 스팀은 대한민국에 게임이라는 취미를 정착시켰다. 이제는, 돈 주고 게임을 하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된 것이다.




불법의 회색지대에서 자라 온 불안정한 우리 청소년 세대는 이제 정품을 구매하며 저작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세대로 성장했다. 이제 게임을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발자와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그들의 창작물에 소비자로서의 의사를 표현한다는 행위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오히려, 돈이 남고 시간이 부족하게 된 지금, 몇몇은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게 될 먼 미래를 기다리며 '게임을 모으는 게임'을 하는 부류도 많이 생겼다. 나 또한 두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이후로는 도저히 게임할 시간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플레이할 거라 기대하며 라이브러리에 꽉 찬 신작 게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만족감이 들 때가 많다.


우리는 이제, ‘그 시절 복돌이’였던 자신을 부끄럽게 돌아보며, 콘텐츠에 값을 치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창작에 대한 존중이며,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이기도 하다.


비록 최근 들어 게임 개발사의 경영난이나, 여러 경제상황으로 인해 게임 정가를 다시 예전의 비싸다고 느끼는 체감가로 올리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한 번 정착한 저작권에 대한 의식은 쉽사리 물러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작정 불법 다운로드나 시디를 구우려던 그때와 달리, 우리에겐 가격의 합리성과 재미가 담보된다면 얼마든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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