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의 시간이 달리 흐르는 나날에
2011년도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대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26살이었다. 신입사원인 나에게 차장님, 부장님들은 감히 고개를 들어 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진짜 어른'에 가까운 분이셨고, 대리님이나 과장님이라고 해도 절대 근처라고 느껴지지는 않을 정도의 거리감이 있었다.
그때 86년생입니다,라고 말하면 보통 "이야 88 올림픽 호돌이 때 나온 애네, 호돌이 알아 호돌이?"라거나, "서태지는 우리 때 사람인데 너도 서태지를 안다고?!"같은 말을 듣기 일쑤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 거리감은 더욱 아득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접점을 찾으시려는 이유도 잘 알지 못했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내가 그 위치가 되었다. 90년대 중반, 가깝게는 이제 2000년도에 태어난 사람도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그들은 내가 "2002년 월드컵 정말 대단했는데"라고 말하는 걸 "하하하...^^"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에게 축구선수는 손흥민이고, 안정환은 방송인인 것처럼, 나 또한 그들에게 나이 든 한 사람의 꼰대의 위치가 된 것이다.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이맘때의 나는 대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망친 데다가 부산이 고향이었던 아랍어과 첫사랑 여자 동기와 잘 되지 못한 탓에 실연에 빠져 무작정 서울에서 해운대로 가는 무궁화호 야간기차에 몸을 싣고 충동적인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당시에 혼자 가려고 했지만, 친구 한 명이 갑자기 내 옆자리로 앉아 "나도 같이 가자"하고 둘이서 밤을 기차에서 보내고 내린 새벽 다섯 시, 해운대 앞바다에서 일출을 보며 먹었던 라면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했던 두려움이 없던 그 시절은 가히 청춘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20년 전에 입학했던 대학교를 뒤로 하고 달려온 지금 내 옆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그 사이에 나온 두 딸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벌써 밑에 팀원도 몇 명 두고 있는 누가 봐도 성공적인 '중년'이 되었다. 요새는 만으로 39살까지 청년이라고 하니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막차 청년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그게 의미가 있나.
20년 전에 내가 그리던 삶과 얼마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솔직히 직업적으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 문학보다는 언어학에 관심이 깊어졌고, 대학원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박사 학위를 따야겠다는 일념을 다지고 있었다. 논문 주제도 확고했는데, 각 나라에서 표준어와 사투리가 서로 달리 발달하게 되는 기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연구 주제로 잡았다.
물론, 결과는 보다시피 내 졸업장은 학사에서 멈췄고 대신 어느 외국계 회사의 Commercial Finance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명함 한 장이 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내 안에서 그 공부에 대한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을지라도, 이제는 현실적으로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길의 중간에서 보이지도 않는 출발점을 돌아보며 '이제 다음은 이 길로 가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길이, 비록 20년 전에 내가 그리던 길과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을지라도 후회가 그리 깊고 크지는 않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기회비용은 언제나 발생하겠지만, 만약 나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져도 그걸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삶의 큰 방향인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는 나'자체는 잘 지키고 살고 있으니 된 거 아닐까.
요새 퇴근길에 지하철 배너에 보면 어느 보험사 광고에서 젊음이 길어진 시대니 보험도 젊어진다는 내용으로, 각자 현재 나이에서 0.8을 곱하는 실제 나이로 계산하라는 광고가 계속 나온다. 참신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물리적 나이를 이렇게 굳이 무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제법 들게 된다.
이제는 왜 그때 어른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고 말하셨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굳이 자신의 나이를 간과하고 언제나 무엇이든 후회 없이 다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나이 듦은, 그 나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밑의 세대에는 모범이, 앞의 세대에선 삶의 지혜를 얻어가며 자기 삶을 한 발자국씩 내딛을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굳이 내 나이를 젊게 생각하고 싶지도, 언제 이렇게 나이 들었지 하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나이 듦은, 사라짐이 아니라 깊어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