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홈 Feb 22. 2024

엄마의 사랑

80 먹은 노모가  가져온 우비

지난 일요일, 내가 근무하는 일터에 어머니가 오셨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 자주 오신다. 내가 일하기 전에도 자주 왔던 것인지, 내가 일하니까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일단 내가 일하기 전에도 자주 오던 곳이었다고 해두자.


내가 근무하는 곳은 집에서 멀지 않다.

식비 절약 차원에서 밥과 반찬을 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이유로,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눈길만 아니면, 비 오는 날만 아니면, 추워도 더워도 문제없다.


그날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그날 낮에 비가 내렸다. 비록 우산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동료에게 빌려 쓰면 된다. 그게 안되면 사무실에 물어보고 여분의 우산을 빌려 쓰면 된다. 이제 나는 그런 것쯤은 어련히 알아서 할 줄  아는 중년 아줌마인 것이다.


말했듯, 할머니가 나의 직장에 자주 오기도 하거니와,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 즈음 나의 직장에 오셨다. 내가 일을 하기 전에는 그곳이 할머니의 쉼터이기도 했을 것이기에 우선 할머니가 나의 직장에 오는 것은 나와 상관없이 오는 것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할머니는 그전 주에도 오셨고, 그 전전주에도 오셨다. 점심 즈음에 오시길래, 한 주는 '오신 김에 식사나 같이하시자'고 청해 근처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지난주, 할머니가 또 오셨다. 다만 그날은 좀 달랐다. 손에 우비가 들려 있었다.  왜냐하면 그날 낮에 비가 왔기에..........


만약에 십분 양보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니는 초등학생이었다고 치자. 그러면 그 행위가 엄마의 딸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라며 기뻐하고 고마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그런 게 너무 필요했고, 간절히 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그런 게 필요할 때는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이 먹을대로 먹은 중년의 아줌마에게 80 먹은 할머니가 직장에 우비를 가지고 오신다. 내가 삐딱해서 고마운 줄 모르는 것이라고 매도해도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중년 아줌마에게 비 온다고 우비를 가져오는 할머니의 이 행위는 고마움이  아니라 창피함이었다. 그렇다. 창피했다. 그것도 너무너무 창피했다. 가져온 사람 무안할까봐 내 마음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빌려 쓰기도 하고, 비가 오면 끌고 온 자전거를 일터에 세워두고 나중에 찾아갈 줄 아는, 제 앞가림할 줄 아는 딸이라는 것을 80 할머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중년 아줌마인 딸 직장에 80 노모가 우비를 가져다주는 행위가 다소 부적절해 보이지만, 80 노모 입장에서 딸을 생각하는 따뜻한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애써 달래 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의 사랑도 나이 들어가면서 질적인 변화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그림책 제목은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였다.

작가의 이전글 세신비 3만 원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