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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정받아 뭘 하려고 했을까?

마흔여섯 살, 삶을 시작하다.

밤새 뒤척였다.

새벽 시간 책상에 앉았다.


종이와 펜을 가져다 놓고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얼굴 반쪽을 만지며 내게 물었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 일까……”


부유했던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버지가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면서  어린 나와 남동생은 할머니와 고모들 손에서 자랐다.  나는 존재 만으로도 짐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본능적으로 할머니나 고모들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노력할수록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나를 사랑해 줄지..

엄마는 아버지의 부재와 견딜 수 없는 시집살이를 피해 종교로 숨어 버렸고 나와 동생을 돌볼 여력도, 의지도 없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끼니만큼 배도, 마음도 허기지며 자랐다.


나는 내 나이 또래에 비해 유난히 키가 크고 머리색이 유전적으로 노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지금이었으면 선망의 대상이었겠지만 35년 전에는 재앙이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매일 복장 검사에서 “염색”으로 걸려 교무실로 끌려가곤 했다. 유전이란 말은 당시 선생들에겐 가당치도 않은 거짓으로 들렸고 더 큰 체벌을 불러들이는 이유만 됐다. 그렇게 때려도 한 번도 학교로 찾아오지 않는 부모는 그들에게 내가 내놓은 자식일 거란 확신을 주었다.


 “노는 애” 일 것 같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의 구타와 체벌이 이어졌다. 선생이 기분 내키는 대로 빰을 때려대던 게 일반사였던 시절이었다지만 그때 나는 겨우 10대 여학생이었다. 수차례 수십 명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생긴 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구타를 당한 그 공포감과 수치심은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때 내가 느낀 공포감은 맞는데서 오는 공포감이 아니라 아무도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그래서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됐다는 공포감과 수치심이었다.


그 후의 삶에서 나는 병적으로 인정받는 데 집착을 했다.

아르바이트 건 직장이건 인정받기 위해선 뭐든 했다. 부조리하고 불합리 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일로, 성과로, 돈으로 증명하려 했다.

몸은 자랐지만 내 자아는  칭찬받고 사랑받기 원했던 어린 자아에서 한 발짝도 자라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얻으려던 인정이지만 그 인정이 가져다준 행복은 사실 허무할 정도로 짧았고 오히려 그 인정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의 크기는 나날이 버겁도록 커졌다.

인생의 어느 날 나는 아마 알았을 거다…다른 이로부터의 인정이 내가 원하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멈추지 못하고 그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인이 된 이후 벌어진 삶의 방향은  나의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결정들로 인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46살 어느 날 ….. 한쪽 눈이 내려앉고서야 비로소 내 삶을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겪고 있는 오늘의 이 삶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분명한 내 선택이었다는 걸.  시댁과 친정의 터무니없는 요구도 직장에서의 터무니없는 처우도 다 내 암묵적인 동의 하에 자행돼 왔던 거란 걸.


인정받는다는 게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학문적 정의는 무엇인지 몰라도 내 경우엔 내 존재가치를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고 살았다는 것이다. 나를, 내 가치를 나 스스로 인정한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어린 나는 당연히 인정이라는 이름의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겠지만 성인이 된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하고 독립적인 나 자신의 인정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나는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돌볼 줄 알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교통질서도 지킨다.

됐다…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다.

마흔여섯... 이제  처음 내 기준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갈 준비가 된 것 같다.

오늘, 이 밤… 처음으로 어른이  됐다.

나는 이제 어느 누구의 인정에 의존하여 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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